열매 맺는 계절, 결실의 계절, 감사의 계절, 10월입니다. 10월 31일은 종교개혁 505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종교개혁은 왜 일어났는가? 이 질문은 해마다 10월의 마지막 날 우리들이 기념하는 종교 개혁 기념일을 맞이하며 반드시 생각해 보아야 할 질문입니다. 그러나 이 질문은 매우 크고 넓은 주장입니다. 만일 이 질문이 “어떻게 해서 종교 개혁이 성공적으로 진행되어 당대의 부패한 교회와 사회를 개혁하고 성경적으로 바른 교회와 사회와 그런 신학을 형성하게 되었는가?”라는 질문이라면 종국적으로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에 의해서” 라고 대답하면서 그 가까운 원인들을 다 찾아 대답해야 할 어렵고도 폭 넓은 질문입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가 아니었다면 종교 개혁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진 마르틴 루터는 그 이전에 비슷한 주장을 했던 존 위클리프나 그의 글을 따르다가 1415년 7월 6일에 화형 당한 존 후스나 1536년 10월 6일에 목이 비틀리고 화형당한 윌리엄 틴델과 같이 정죄되고 화형 당해 죽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루터가 종교 개혁적 주장을 하고서도 사형당하지 않고, 그의 가르침을 따르는 많은 이들이 생겨서 종교 개혁이 이루어 진 일은 참으로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에 의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일단 우리의 질문은 종교 개혁에 성공했건, 아니면 후스와 같이 화형 당해 죽었건 당대에 종교 개혁적 주장이 일어나게 된 원인이 무엇인가를 묻는 것에 한정해 보려고 합니다.
당대 교회와 사회의 외적인 부패 흔히 종교 개혁 전야라고 불리던 중세 말기의 천주교회에는 여러 가지 도덕적 문제가 모든 사람들이 목도할 만하게 아주 분명히 나타났었습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성적인 부패였습니다. 성경의 명확한 가르침에 반해서 성직자들의 독신제도를 고착화 시킨 당시 천주교회 내의 성적인 부패는 매우 심각한 일이었습니다. 고위 성직자들이 실질적인 아내를 두었고 그들의 자녀들에게 다른 직임과 함께 성직을 물려주는 세습의 문제가 당대의 외적인 부패의 또 다른 단면이었습니다. 그것 배후에는 모든 문제와 관련해서 돈 중심으로 생각하고 살아가는 물질 중심주의가 있었습니다. 당대에 문제가 되었던 면죄부를 파는 일도 결국은 누가 그 권한을 가지는가, 그리하여 누가 돈을 많이 벌 수 있느냐가 상당히 중요한 문제가 되었습니다. 이는 성직 매매 문제와 함께 당시의 모든 것이 돈을 버는 것과 관련 되어 있음을 절실하게 느끼게 해 줍니다. 그리고 그 대가의 하나로 그의 영토 내에서 8년 동안 면죄부를 발행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수익금의 절반은 알바트가 가지고 절반은 베드로 성당 건축비로 내도록 했다고 합니다. 물론 면죄부 판매인들은 성당 건축을 위한 기부를 백성들에게 요청하여 실질적인 문제는 알 수 없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명예와 힘을 휘두르는 것이 당시에 매우 중요한 가치로 자리 잡아 가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끔 합니다. 그리고 일반 민중들은 성경적인 형태의 경건보다는 자신들에게 익숙한 형태의 경건 생활의 형태를 유지하여 수 없이 많은 미신을 양산해 갔습니다. 십자가 자체에 의존하고 손으로 그은 성호가 자신들을 악마로부터 지켜 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성자들의 무덤에서 기도하면서 점차 성자숭배에로 나아가는 등 온갖 미신이 난무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부활절 어간에만 일반 민중들에게 공개되었던 수 없이 많은 성물들에 대한 숭배는 이런 미신을 조장하는 데 중요한 기연이 되었습니다. (이는 오늘 날 한국 교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대부분의 문제와 놀랍도록 흡사하다는 것이 우리를 놀라게 합니다. 비록 시대적 차이와 상황의 차이 때문에 구체적으로는 다를 찌라도 성적인 문제, 세습 문제, 돈 문제, 명예와 힘의 문제,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비성경적인 종교적 행위를 하는 미신의 문제라는 본질은 뚜렷한 유사성을 나타내 보입니다.)
그런 인식을 가능하게 한 것은 역시 성경의 가르침이었습니다. 성경의 가르침에 비추어 볼 때 자신들이 속해 있던 교회의 가르침과 예배와 제도가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아주 분명하게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점차 당대 교회를 성경의 가르침에 비추어 정확한 이해를 가져 나간 루터는 후에 “다른 사람들은 생활을 공격했지만, 나는 교리를 공격한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즉, 그는 중세 로마 가톨릭 교회의 병폐가 아니라, 로마 가톨릭 교회의 기독교 이해 자체를 공격한 것입니다. 그는 “나는 기독교를 보존해야만 하는 사람들, 즉 주교들과 학자들 가운데에는 참된 기독교가 존재하기를 그만두었다고 말할 뿐이다”고 말합니다. 바로 이것이 종교 개혁의 근본적 이유였다고 말해야 합니다. 말하자면, 당대의 교회가 참된 교회가 아니기에 종교 개혁이 일어난 것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제 2의 종교 개혁을 운운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이와 같이 이 세상에 교회라고 이름 하는 기관과 공동체들이 있지만 그것들이 실질적으로 성경이 말하는 교회가 아닌 상황에서만 언급될 수 있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 여러 가지 부패가 있고 잘못이 있을 때 우리는 그것을 성경에 비추어 고쳐가고 갱신하는 일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종교 개혁이라는 말은 교회라고 이름 하는 것이 참 교회가 아닌 상황에서라야 할 수 있는 말입니다. 중세 말기의 교회, 루터 자신이 그 안에서 수도 생활을 하고, 수도사가 되고, 신부님이 되어 미사를 집례 하던 그 교회 공동체인 로마 가톨릭 교회가 교회라는 이름을 가졌으나 교회가 아닌 공동체가 되어 버렸습니까? 루터와 다른 개혁자들은 중세 말기의 로마 가톨릭 교회 안에서는 성경이 말하는 복음이 선포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참된 복음이 왜곡되고 잘못된 복음이 선포되어 많은 백성들을 오도하기 때문에 참된 교회가 아니라고 한 것입니다.
오늘날도 성경이 말하는 복음 외에 다른 것이 선포되거나, 성경의 복음을 왜곡하는 소위 교회들은 모두 참된 교회가 아닌 것이 됩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는 어떻습니까? 한국 교회 중의 대부분은 여러 가지 문제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사람들 앞에서 우리가 진정한 교회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는 일을 감당하지 못했다고 겸손히 회개하는 일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진정한 교회는 항상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서 자신을 회개하고 자신을 새롭게 하는 교회 공동체입니다. 그 갱신의 힘과 능력을 성령님께서 공급해 주시기에 우리는 성령님에 의존해서 성경의 가르침에 비추어 우리들의 문제를 찾아 가야 합니다. 그리고 성경이 인도하는 대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특히 교회 세습 문제, 목회자들의 재정적 투명성이 부족한 문제, 목회자들과 성도들의 성적인 타락 문제, 우리 주변 사람들의 가난과 아픔에 동참하는 것에 게으른 문제, 그리고 성경에 근거하지 않고 효험만 있으면 어떤 형태의 종교적 행위도 다하는 문제 등은 거의 모든 사람들이 지적하는 우리들의 외적인 부패의 문제입니다. 이 모든 일에 대해서 우리들은 진정한 회개의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종교 개혁을 생각하면서 우리는 우리의 믿는 바가 무엇인지를 신경 써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믿고 있는 것 가운데서 성경의 가르침에 비추어 틀린 것들, 우리의 예배 가운데서 성경에 비추어 잘못된 것들, 우리의 교회 제도 가운데서 성경에 비추어 틀린 것들을 고치는 일을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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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날 : [2022-10-11 17:09: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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