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재 목사
(전,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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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는 양대 사이비 신흥종교가 존재한다. 이른바 일본형 이단종파로서 국가적, 정치적 영향력이 대단하다. 하나는 일본 토종 종교인 신토(神道)에서 파생된 ‘세이초노 이에’(生長の 家, 1930년, 다니구치 마사하루 谷口雅春가 창설)로서 그 교리의 핵심은 불교, 기독교, 이슬람, 유대교 등 지구상의 모든 종교의 시작은 신토의 진리인 ‘아마히토노카미’(現人神)인 ‘하늘의 황제’, 천황(天皇)에게서 비롯되었다는 황당한 국수주의적(國粹主義的) 종교를 가장한 이단종파이다. 예를 들어 태평양전쟁이 임박했던 1940년, 기관지 「세이초노이에」 9월호에 다니구치(谷口)는 ‘천황 신앙’을 신자들에게 호소하고 있다. 그 글의 일부분을 게재한다. “천황으로 향하는 길이야말로 ‘충’忠이다. 충은 천황에게서 흘러나와 천황으로 돌아간다. 천황을 우러르고, 천황에게 귀일하여 나를 버리는 것이 ‘충’이다. 모든 종교는 천황에게서 시작된다. 대일여래도, 예수 그리스도도 천황에게서 시작되었다. 이는 하나의 태양에게서 일곱색 무지개가 피는 것과 같다. 각 종교의 본존만을 예배하고, 천황을 예배하지 않는 것은 무지개만을 예배하고, 태양을 알지 못하는 이치와 같다. 모든 종교의 시조는 나팔에 불과하니, 우주의 대교조는 오로지 천황 뿐이라.” 다니구치는 이 밖에도 ‘대일본제국은 신국(神國)이며, 대일본 천황은 절대적인 신(神), 대일본 민족은 그 적자(適子)’라고 열광적인 주장을 줄기차게 해 온 인물이다. 이처럼 ‘세이초노이에’가 표면적으로는 정치활동은 유보하고 있다고 하지만, 사실 아베(安倍)의 극우 집단인 ‘닛뽕카이기’(日本會議)의 핵심 사상의 공급원인 셈이다.
다른 하나는, ‘소카각카이’(創價學會, 일명 남묘호렝겟쿄, 1930년, 마키구치 츠네사부로 牧口常三郎, 이사장 도다 조세이 戸田城聖)로서 불교에서 파생된 이른바 ‘니치렌’(日蓮, 1222-1282)이 주창했던 불법(佛法)을 신앙의 근간으로 한 이단종파다. 이 집단 역시 대전 전후, 일본 극우 정당 ‘고메이도’(公明党)를 창설하여 현재 일본 정치에 7-800만 표를 안정적으로 모을 수 있는 종교집단으로서 집권 여당 자민당(自民黨)과 연립정부를 형성하고 있다. 여기서 보듯이 사이비 이단 신흥종교의 공통점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보수 우익에 서서 종교의 기반을 정치적으로 뿌리 내린다는 점이다. ‘소카각카이’ 역시 종교 단체임에도 선거가 조직을 이끄는 힘이 되고 있다. ‘고메이도’(公明党)가 선거에서 승리할 확률을 높이며, 의석을 확대하는 것 자체가 ‘소카각카이’(創價學會) 활동의 주가 되어 버렸다. 제사보다 젯밥에 방점을 찍은 꼴이다.
도쿠가와 바쿠후(徳川幕府)를 물리치고 정권을 장악한 조슈(長州, 현 야마구치山口藩), 사츠마(薩摩) 현 가고시마) 세력이 정권의 정당성을 ‘텐노’(天皇)를 통해서 확보한 결과가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이고, 그 상징적 현상이 왕실을 교토(京都)에서 에도(江戶)로 옮긴 현 도쿄의 황거(皇居)이며, ‘메이지진구’(明治神宮)가 일본인들의 정신적 본향이 되었다. 또한 일본 국민에게 있어서 종교적으로나 정치적으로 거의 무리 없이 숭배의 중심이 된 것은 일본 건국신화(日本書紀)의 전설이 천황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근거로 공교육을 강화한 결과물이며, 특히 제2차 세계대전인 태평양전쟁을 통해서 천황의 신격화가 모든 교육에서 최우선되었다. 심지어 밤이면 불빛이 새지 않는 공간(防空網)에서 반상회로 모여 ‘황국신민서사’(皇国臣民の誓詞)를 외우게 할 뿐 아니라 전국민 황거요배(皇居遙拜)를 강요했던 일들은 필자가 일본에서 직접 겪었던 수모의 역사이다. 대전 말기 패색이 짙어진 일본의 내각총리대신, 육군대신, 육ㆍ해ㆍ공군총사령관을 겸임한 전쟁광 도조히데키(東條英機, 1884-1948)는 미태평양 함대와 여러 도서에 위치한 미 군사기지를 공격하기 위해 해ㆍ공군 자살특공대를 결성하여 ‘가미카제’(神風), ‘닌갱교라이“(人間魚雷)가 되는 것이 ‘텐노’(天皇)에 대한 가장 영광스러운 충성이라고 최면 선동함으로써 20세 초반의 순수한 젊은 꽃들을 무고(無辜)하게 산화시킨 잔혹성을 서슴지 않았다. 오사마 빈 라덴이 주도한 9.11테러를 비롯한 탈레반, IS 이슬람 과격 집단과 다를 바 없는 천인공노한 만행이 아니었던가.
하나님의 형상(Image Dei)으로 지음 받은 고귀한 인간으로서의 생명을 소모품처럼 소멸되게 한 전범(戰犯)들의 사고는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바로 요시다 쇼인(吉田松陰)의 야욕의 산물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야욕은 우리 조선 반도를 발판으로 삼아 대륙침략이었다는 것은 진술한 바 있다. 쇼인의 설계대로 1868년 ‘메이지유신’에 성공한 신흥 세력은 일왕을 중심으로 하는 중앙집권 체제를 갖추었고, 동시에 산업화와 군의 현대화에 전력투구하였다. 징병제를 도입하여 강한 군대를 육성하는 데 육군 장비와 훈련에는 독일 제도를, 해군 장비와 훈련에는 영국 제도를 과감하게 도입하여, 강력한 군대를 형성하였다. 그리하여 서구식 산업화와 군 현대화를 이룸으로써 쇼인의 설계대로 한반도를 대륙 진출의 발판으로 삼아 20세기 중반까지 일본제국의 패권이 동아시아를 황폐화시켰던 것이다. 청일전쟁(1894-1895)과 러일전쟁(1905~1906)은 왜, 어디서, 어떻게 벌어졌으며, 그 전쟁의 결과는 어떠했는가? 말할 것도 없이 일본제국이었다. 이 두 전쟁의 원인은 우리의 조선반도와 만주를 놓고 벌어진 싸움이었다. 청일전쟁은 주로 평양과 황해 라우둥반도(遼東半島)였으며, 러일전쟁은 청나라 라우둥반도 뤼순(旅順)이었다. 그러나 국권을 빼앗기고 노예나 다름없는 식민 지배의 세월을 보냈던 우리 나라와 중국, 대만 등 동아시아 및 동남아시아 피해 당사국들이 받았던 뼈저린 박해에 통절한 사과는커녕 무시하는 오만으로 일관하고 있는 가해자가 바로 일본의 극우 세력이다. 현재 일본의 정치문화에서 특이한 점은 국민의식이고, 세습 정치이다. 일본인들은 특정 지역(야마구치 현, 가고시마 현, 고치 현)으로의 권력 편중을 용인하는 태도를 취한다. 통치는 자신의 일과 관련 없는 지배계급의 일이며, 자신은 자기 일만 잘하면 국가 사회는 발전할 것이라는 중세적 관념에 기반한 집단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7백 년 이어온 바쿠후(幕府) 사무라이 통치와 메이지유신 후 신흥 집권 세력에 의한 제국의 통치가 일본인들 유전자(DNA)로 고착되어버린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그런 까닭에 일본 정치인의 대부분은 여야를 막론하고 세습정치를 한다. 이것은 국민 대다수가 정치에 무관심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일본 중의원(하원), 참의원(상원) 등 국회의원들은 중조부, 조부, 부를 포함한 조상들이 정치인인 경우가 많다. 총리를 포함해 장관급 정치인은 거의 절대다수가 정치인가문의 후예들이다. 그리고 그들은 기업과 혼인 등의 인연을 맺어 물적 기반을 마련한다. 따라서 2백 년에 걸친 권력의 특정지역 편중과 금권정치는 부패정치로 이어질 수밖에 없어 늘 정치 스캔들이 끊이지 않는 나라이다.
한편, 「반공을 국시의 제일로 삼아」 1961년 5.16 군사 쿠데타에 성공한 박정희 정권에 재빨리 편승한 통일교 문선명은 「국제승공연합」이라는 별개 간판을 내걸고 활발한 포교에 나섰으며, 자유 우방으로 보폭을 넓혀 1964년 일본 정부로부터 종교법인 인가를 받고 본격적으로 포교에 나선다. 특히 좌익 학생들의 투쟁이 맹렬했던 1968년, 문선명은 이들에 대항하기 위한 조직으로 기시 전 수상 등과 손을 잡고 「국제승공연합」을 조직했고, 이것이 일본 자민당(自民黨)과의 깊은 접점이 됨으로써 오늘날도 100여 명에 달하는 국회의원들이 통일교의 조직과 정치자금을 지원 받고, 통일교는 정치인들의 지원과 권력을 지렛대로 삼아 꾸준히 교세 확장에 나서는 등 상호 거래 관계에 있는 것이다. 소선구제로 극히 적은 표차로 당락이 갈리는 현실에서 조직 동원력이 있는 통일교는 그만큼 정치적 활용 가치가 클 수밖에 없고, 기시(岸)의 외손자 아베 신조에 이르기까지 통일교 행사 때마다 참석하여 축사를 할 정도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이단에 빠진 어리석은 신도들의 피해는 사회적 문제로 심화된 지 오래다. 이와 같은 면에서 아베 암살 사건은 역설적이게도 ‘사이비 종교와 정치의 거래’라는 일본 정치의 음습하고 추한 단면을 향해서 피해자 야마카미 테츠야(山上徹也, 41세)가 총을 쏜 것이라고 단정지을 수 있다.
또 한 가지 짚어야 할 것은 ‘야수쿠니진자’(靖国神社)에 대한 피해 당사국의 거친 반응 문제이다. 일본인의 종교적 사생관은 “인간은 죽으면 신이 된다”는 사상이다. 일본의 ‘신사’(神社)란 황실의 조상이나 신대(神代)의 신, 또는 국가에 큰 공로가 있는 사람을 신으로 모신 사당(祠堂)을 말한다. 본래 메이지 일왕 시절인 1869년, 조슈 번이 도쿄에 청일전쟁, 러일전쟁, 만주사변 등에서 전사한 군인들의 위패를 안치하고 이들을 신격화해 제사를 지내는 사당으로 건립하였다. 그러나 문제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씻을 수 없는 범법 행위로 사형을 당한 A급 전범 도조(東條)와 7인의 유골, 심지어 강제징용을 당해 억울하게 죽은 한국인의 유골 등을 합사하고, 종전기념일(그들은 패전을 종전이라 한다)이면 총리 및 내각들이 그 신들에게 참배함으로써 한국을 비롯하여 피해 당사국의 아픈 상처를 자극하는 행위를 하고 있다. 아베의 전 총리 고이즈미 준이찌로(小泉純一郎)부터 노골적으로 참배하거나 곡물헌납을 통해서 국가 간의 선린 관계를 파괴하였으며, 한국의 경우 위안부 할머니들의 진솔한 사과 요청, 강제 징용자들의 재판 결과에 따른 보상 요청 등을 일체 거부하고, 오히려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선린 회복의 답을 가져오라는 천인공노한 오만을 떨고 있는 것이 일본이다. 그 뿐이랴? 독도가 역사적 우리 고유의 영토임에도 불구하고 일본 땅이라고 억지를 부리는 것은 물론, 일본 중등 교과서에 등재되었던 과거 일본의 한반도와 동아시아 침략과 막중한 피해 사실(史實)들 일체를 2023학년도 판에 완전히 삭제하는 왜곡된 역사를 가르치려는 국제적 범법 행위를 감추고 정당화하려는 속 좁은 일본 극우세력들의 파렴치함이다. 이토 히로부미의 정치 역정을 벤치마킹한 정치인이 바로 아베 전 총리이다. 그가 재임 중 집요하게 목숨을 걸고 ‘평화헌법 개헌’을 추진을 하였고, 개헌을 통해 군사대국을 꿈꾸는 극우 행보를 벌인 최장수 총리였던 아베의 정치적 성향과 지향점은 백 년 전 일본 초대 총리가 된 뒤 네 차례나 역임한 아시아 침략의 주범이자 조선 침탈의 원흉 이토(伊藤)와 여러모로 닮았다는 점에 주목한다. 아베는 죽는 그 날까지 혐한(嫌韓)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그가 총격을 받고 쓰러지자마자 한 언론이 저격범은 한국계인지 모른다는 추측 기사는 어쩌면 일본인 사회에서의 대한(對韓) 정서였는지 모른다. 아무튼 기시다(岸田) 자민당 정부의 아베 국장(國葬) 무리수는 정치에 무관심했던 일본인들에게 큰 저항으로 대두되었다. 일본 여론기관에 따르면 국장 반대가 62.3%, 찬성이 35%라고 하니 자민당 정권 자체가 위태로운 상황이다. 7월 8일 아베가 사망한 다음날 우리의 외교 수장은 아베를 추모하며 “위대한 정치 지도자”, 또 대통령은 “아시아의 위대한 정치 지도자”라는 외교적 수식어를 썼을 때, 필자로서는 이들의 역시 인식에 아쉬움을 가졌다.
우리의 역사 인식이 바로 섰을 때, 미래지향적인 선린 우호는 증진된다. 더욱이 그리스도인으로서 과거에 매인 사관(史觀)이 아니라 대등하고 상호 우호적인 사랑으로 잇는 다리(Bridge)가 되어 진정한 교류가 극대화되기 위해서는 과거를 인정하고, 현재의 장애물을 제거하는 일에 한․일 양국의 교회가 적극 나섰을 때 진정한 교류가 가능하다고 말하고 싶다. 그래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