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만 가지 종교가 있습니다. 이 수많은 종교들 중 제일가는 종교는 어떤 종교일까요? 종교인들은 자기가 신앙하고 있는 종교를 제일 좋은 종교로 알기에, 자기 종교를 믿고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말씀으로 창조되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사람들이 만든 것은 생명이 없는 다 죽은 것들입니다. “모든 지킬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종교학에서 고등종교와 하등종교를 구분하는 분기점을 ‘자기부인’으로 삼고 있습니다. 자기부인이 있으면 고등종교, 없으면 하등종교로 분류합니다. 물론 굿하는 무당도 자기를 부인하기는 합니다. 굿을 앞둔 무당은 자신을 정결케 하기 위해 부부관계를 갖지 않습니다. 스스로 부정하다고 여기는 것은 절대로 만지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무당이 하는 행위가 자기부인이 아닌 이유는 실제로는 또 다른 욕망을 성취하기 위한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것은 자기부인이 아니라 변형된 자기강화입니다. 종교학에서 말하는 자기부인이란 영원한 가치를 위하여 자기욕망을 부인하는 것을 말합니다. 어떤 종교가 표방하는 영원한 가치를 위하여 인간의 욕망이 부인되어야 한다면 그 종교는 고등종교로 간주됩니다. 그러나 자기부인처럼 보이지만 단지 욕망의 성취를 위한 것이라면 그 종교의 형태에 상관없이 그것은 하등종교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슬람교에는 이슬람교가 추구하는 영원한 가치를 위한 자기부인이 있습니다. 불교와 기독교에도 있습니다. 그래서 종교학에서는 이 세 종교를 고등종교로 분류합니다. 그런데 고등종교가 타락하면 예외 없이 나타나는 공통적인 현상이 있습니다.
첫째, 성직자의 급증입니다. 고려 말 불교가 타락했을 때 온 땅이 스님 천지였다고 합니다. 티베트 라마불교가 타락하게 될 때 티베트 남자의 70%가 승려였다고 합니다. 1979년 회교혁명으로 팔레비 왕조를 몰아낸 회교의 최고지도자 호메니는 스스로 최고의 권력자가 되었고 이란은 회교 성직자 세상이 되었습니다. 카톨릭이 부패했을 때에 유럽 대륙의 신부들이 넘쳐났음은 두말 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렇게 고등종교가 타락할 때 성직자가 늘어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자기부인이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가치를 위해 자기 삶을 부인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 앞에서 모든 사람들의 모본으로 살아가는 구도의 삶입니다. 따라서 자기부인이 제대로 이루어지는 종교라면 성직자가 급증하기 어렵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직자의 숫자가 급증하는 종교는 자기부인이 사라지고, 성직이 모든 사람들이 탐내는 세속적인 직업으로 타락했다는 증거가 되어 집니다.
둘째, 종교기관의 급증입니다. 갑자기 늘어난 성직자들이 먹고살기 위하여 그들이 일하는 종교기관이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유럽의 대부분의 교회가 비어져 있습니다. 그렇다고 교회가 문을 닫는 경우는 매우 드뭅니다. 왜냐하면 성직자들이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관광명소가 되어 가고 있는 엄청 커다란 유럽의 교회들은 지난 날 종교가 타락했던 흔적이라고 보면 됩니다. 지금 유럽에서는 성직자들이 국민들이 낸 종교세를 가지고 주는 국가의 월급을 타고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셋째, 신앙의 기복화 현상입니다. 신앙이란 절대자인 신 앞에 인간이 변화되어 가는 것입니다. 반면에 미신은 인간이 자기 목적을 세우기 위해 자기 소유나 달란트로 신을 달래고 신을 변화시키려는 것입니다. 자기 변화 없이 자기 욕망을 위해 신을 변화시키려고 한다면 그는 설령 고등종교에 속해 있어도 그는 미신을 좇는 자요, 기복주의자입니다. 왜 신앙의 기복화 현상이 일어날까요? 고등종교가 타락하면 성직자가 늘어나고, 급증한 성직자를 먹여 살리기 위해 종교기관이 늘어나고, 거기서 살아남으려면 교인들을 붙잡아 두어야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종교가 자기부인이 아니라 미신적인 기복신앙화 될 수밖에 없습니다. 교인들을 붙잡아 두기 위해서는 진리의 말씀을 가르치기 보다는 교인들의 욕구와 구미에 맞는 말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자기 종교가 추구하는 영원한 가치를 단순한 복과 저주의 저차원으로 성직자 자신의 손으로 끌어내리는 것입니다.
넷째, 종교의 이해집단화 현상입니다. 본래 표방하던 영원한 가치는 아랑곳없이 종교집단이 하나의 거대한 이해 집단으로 변질되는 것입니다. 중세 카톨릭이 그랬습니다. 세상의 권력을 휘두르며 왕을 파문시킬 때, 베드로 성당을 건축하기 위하여 면죄부를 팔기 시작했을 때, 거기에는 더 이상 진리가 없었습니다. 단지 공룡 같은 이해집단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팔레비를 축출한 호메니는 명실 공히 삼권을 장악하고, 성직자의 비방을 원천적으로 금지하는 법을 만들었습니다. 그와 같은 이슬람교는 더 이상 마호메트가 주장한 이슬람교가 아니라 추악한 이해집단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이상과 같은 고등종교의 타락현상이 우리 나라 교회의 모습과는 관계없는 이야기일까요? 현재 우리 나라의 신학생의 숫자가 전 세계 신학생 수보다 더 많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미국의 유수한 신학교들도 일 년에 몇 차례 씩 정기적으로 신학생을 모집하러 한국에 총장을 비롯한 교수들을 보내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홍수가 나면 사방이 물 천지이지만 마실 물이 없듯이 목회자가 차고 넘치는 데도 참 목사다운 목사님은 많지 않다고들 합니다. 은퇴할 때보면 참 목사인지 삯꾼 목사인지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종교는 사람에게 치유와 회복, 더 낳은 삶을 살게 해 주는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서로 사랑하고 도우며 더불어 살아가는 세계를 열어주어야 합니다. 종교의 영원성도 천국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지구상에 살며 선한 일을 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희생하며 사는 것이 목적이 되어야합니다.
다섯째, 한국 교회의 역사는 분열의 역사입니다. 지금부터 137년 전에 미국 북 장로교와 남 장로교가 한국에 와 대한예수교장로회로 68년 동안 하나가 되어 세상으로부터 칭찬과 존경을 받으며 세상의 리더로 지도자의 사명을 다했는데 지금 세상 사람들이 교회를 염려하고 있다고 합니다. 1953년 예장과 기장이 나누어진 오늘 69년 동안 등록된 교단만 230개가 넘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의 노회가 동서남북 노회로, 거기에서 또 나뉘어 노회장, 임원 아닌 사람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이것이 교회 부흥인가요? 교인은 계속 줄어가고 있는데 교회수와 성직자 수만 늘어나고 있습니다. 교회가 힘이 없습니다.
아마도 계속 교회는 분열될 것 같습니다. 세상에서도 통합해야 산다고 하는 데도 기독교는 무엇 때문인지 교단은 물론 지방 노회까지도 두 쪽, 세 쪽으로 나누기를 좋아하는 것이 지금 한국 교회 현실입니다. 우리 신도들은 왜 그러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신도들은 병신도인지 바보인지 보고만 있어야 하는지 한심스럽고 답답하기만 합니다. 교회에서 바른말을 하고 아닌 것 아니라고 하면 출교당하거나 나쁜 성도, 불순종 하는 믿음 없는 신자로 병신도가 됩니다. 1919년 3.1운동 당시 개신교 남북 인구가 1,500이었고 개신교도 불과 1%였지만 3.1운동을 비롯해 대한민국 독립운동에 지도자로 앞장섰었으며 팔도강산에 교회가 중심이 되어 오늘의 대한민국을 이룩하였음을 누구도 부인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오늘 대한민국 인구 5,000만에 기독교 25% 100만 성도라고 하는데 현실은 어떻습니까? 지도자가 아니라 뒤따라가고 있는 것 아닙니까?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각 교단 신학교에서 쏟아지는 신학생은 몇 천 명을 넘고 있으니 목회자가 늘어난 만큼 교회는 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교단이 다르다는 이유로 한 건물에 몇 개의 교회가 공존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이런데도 문제는 교인 수는 줄어만 가고 있습니다. 전도하기 참 힘듭니다. 한국 교회는 전 국민의 25%가 교인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면서도 사회의 부패는 더해 가고 악은 날이 갈수록 더해 가고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이 제대로 살아가고 있다면 이러한 일이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것만 보아도 한국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이 기복적이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공의와 진리에서 멀어져만 가는 사실이 입증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는 국경을 초월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입니다, 교단도 연합교단으로 되어야 합니다. 우리 신도들은 교파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한분이기 때문입니다. 내 교회가 무슨 파인지 내가 어느 파인지 알지 못한 성도들이 많이 있습니다. 성도들은 내 교회 이름 우리 교회 담임목사님만 알고 있습니다. 한 하나님 한 예수님을 믿는 크리스천들이 한마디로 혼란스러워 합니다. 신학에 무식한 저는 어느 파가 중요 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 한분만이 나의 구원자임을 믿는 자가 진짜 신자라고 생각합니다. 성경을 자기에게 맞추는 자가 이단이요! 나를 성경에 맞추는 자가 정통입니다. 이래서 세상이 교회를 불신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교인마저 교회를 비판합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습니다. 한국 교회에 이제 제2종교계획이 일어나야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말로만 말고 개신교는 날마다 개혁되어가야 합니다. 나 하나라도 올바로 살아 내면 과연 미래가 새로워질 수 있지 않을까 희망을 갖고 몸부림 쳐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