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대 l 축소

전쟁과 나 - 이성재 목사




이성재 목사
(전,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




지난 2월 24일 푸틴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을 감행한 지 6월 4일, 오늘로서 100일이 되었다. 우크라이나가 과거 소련의 품을 떠나 NATO(북대서양조약기구)에 가입한다는 것에 러시아가 위협을 느낀다는 명분하에 선제 공격함으로써 평화로운 한 나라를 무차별 파괴하고 무모한 국민들을 살상하는 전쟁놀이야말로 참으로 통탄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대한민국 또한 1950년 6월 25일, 김일성의 북한 공산당 인민군이 남침했던 민족 상잔(民族相殘)의 비극은 72년을 맞이한 오늘까지 현재진행형이다. 다시 유월을 보내는 나의 소회에 앞서 카카오톡으로 날아온 우크라이나 전쟁 중에 피어난 사랑을 독자와 함께 공유하고 싶어 옮겨 본다.


『“내가 차를 훔쳤어요”라는 도둑의 고백에 차 주인이 나타낸 의외의 반응, 전쟁과 사랑이다. 벌써 2시간, 그는 거리에 서 있는 빨간 승용차 한 대를 지켜보고 있었다.


지금 그는 우크라이나 수도 키우이에 발이 묶여 있다. 폭탄은 여기저기에서 터지고 머리 위에서는 수시로 미사일이 떨어진다. “사상자가 속출하고 있어요.” 아우성이다.


가족과 함께 방공호에 피신해 있던 그는 상황이 악화되자 키이우를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차량도, 휘발유도 구하기 어려운 긴박한 상황이다. 그때 눈에 띈 것이 엉망이 된 도로 한 켠에 서 있는 빨간 승용차 한 대였다. 그 차의 시동 장치에는 열쇠가 꽂혀 있고, 기름도 가득 채워져 있음을 확인하였다. 마치 어디론가 떠나기 위해 대기 중인 차량처럼 말이다. 지켜보던 그는 차를 훔치기로 마음먹는다. 이대로는 러시아의 폭탄에 가족 모두가 몰살 당할 것 같은 위기감에 휩싸였기 때문이다.


2시간 후에도 차량 주인이 나타나지 않자 그는 차를 훔쳐 가족과 함께 떠났다. 키이우에서 서남쪽으로 2백키로미터 떨어진 빈니차에는 그의 친척이 살고 있어 그 곳으로 피난 가기 위해서였다.


무사히 키이우를 빠져 나오기는 했지만, 그는 남의 차를 훔쳐 운전하는 동안 내내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다. 그가 차를 훔친 탓에 누군가 키이우를 탈출하지 못하고 목숨을 잃었을지도 모른다는 죄책감…


그는 차를 뒤진 끝에 글로브 박스에서 차 주인의 전화번호를 찾아 낼 수 있었다. “죄송합니다. 내가 가족을 구하기 위해 당신의 차를 훔치는 커다란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전화를 건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고백하였다. 그런데 차 주인의 첫 마디는 뜻밖이었다. “오! 하나님, 감사합니다”였다.


차 주인은 주춤대는 그에게 “걱정 마세요. 나에게는 차 네 대가 있었고, 우리 가족들은 그 중 한 대인 지프 차로 이미 탈출했습니다”라고 안심시키더니 이렇게 덧붙이는 것이었다. “나머지 차는 기름을 채우고 열쇠를 꽂은 채로 각각 다른 장소에 세워 놓았습니다. 글로브 박스에는 내 전화번호를 남겼고요. 나머지 3대의 차량들에서 모두 연락이 왔어요. 곧 평화가 올 것입니다. 주님의 보호하심을 빕니다. 몸 조심하십시오.”


차 주인은 누군가가 그 차들을 자기 차처럼 타고 피난 가기를 간절히 기도했던 것이다.


차를 훔쳐 포탄이 쏟아지는 전쟁터를 탈출하기를, 한 명이라도 더 살아남아 주기를, 그래서 전쟁 없는 세상을 다시 만나기를 바랐던 그 차 주인의 아름다운 그리스도적 사랑을.』


이 사연은 우크라이나의 전직 외교관이었던 올렉산드르 세르바 씨가 지난 5월 2일 빨간 승용차 사진과 함께 트위터에 공유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던 기사이다. 차를 훔친 이가 누구인지, 차량 주인은 또 누구인지, 그들이 여전히 생존해 있는지 아무 것도 확인되지 않았다. 우크라이나에서의 끔찍한 학살과 죽음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름 모를 우크라이나 차 주인의 이야기는 인간의 고귀한 가치와 앞으로의 희망을 갖게 한다. (번역 : 이대엽)

인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은 인간이 어리석어서 21세기에도 죽고 죽이는 전쟁은 계속되지만, 그러한 절망 속에서도 세상에는 누구라도 사람이라면 반드시 살아 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작은 영웅’들이 있어 희망을 갖게 하는 것을 세계 전쟁사는 증언하고 있다.


생명을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지옥과도 같은 도시 곳곳에 기름을 가득 채우고 차 3대를 세워 둔 그 우크라이나 시민과 같은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있는 한, 인류에게는 아직도 희망이 있다는 애국적 용기와 그 나라의 저력에 전쟁의 승산을 기대해 보게 한다.


부모 형제와 나에게 제2차 세계대전의 한 축(軸)인 태평양 전쟁의 침략국인 일본 본토에서의 전쟁 4년의 세월은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공포와 절망 그리고 십 수번의 피난과 폐허 속의 삶 그 자체였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패망으로 고국 귀환도 잠시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 김일성 공산 집단의 기습 남침은 말 그대로 민족 상잔(民族相殘)의 비극이었다.


한 번 겪기도 몸서리 치는 전쟁을 청소년기에 두 번을 겪었고, 청년기에 접어들어 군대 3년을 경험한 나로서는 전쟁 트라우마가 지금까지 잠재되어 있을 정도로 평생을 괴롭힌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 비춰지는 북한 김정은의 전쟁놀이 심리나 우크라이나 침공을 즐기고 있는 러시아의 푸틴이나 지구 상에 존재할 가치조차 없는 쓰레기에 다름 아니다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세계 제1차, 2차 전쟁에 참전했던 영국의 육군 참모총장 버나드 로 몽고메리 원수 (元帥, Sir. Bernard Law Montgomery, 1887-1976)는 그의 저서 ≪전쟁의 역사≫에 다음과 같이 썼다.


“전쟁은 결코 정당화 될 수 없다. 자신을 지키기 위한 전쟁도 예외는 아니다. 왜냐 하면, 전쟁이 남기는 것은 오로지 파괴와 슬픔 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쟁을 일으키는 자는 그 의도가 무엇이든, 결코 용서를 받을 수 없다. 따라서 나는 히틀러를 용서할 수 없다. 망상으로 인해 벌어진 전쟁에서 수천만 명의 죄 없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기 때문이다.”


지금 나는 TV 화면을 보면서 종이 티슈를 연거푸 뽑는다. 눈물이 나서다.


「아빠의 손을 놓는 아이는 눈물로 울부짖는다. 어쩌면 다시는 살아서 만날 수 없다는 이별에 아이는 다시 오열하지만, 아빠는 이를 악물고 조국을 위해 전쟁터로 달려간다. 우크라이나 동쪽 돈바스에서다.」
전쟁은 너무도 많은 것을 앗아간다. 아니 지옥이 따로 없다. 처참하고 비통하다. 우리 모두 한 마음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의 종식과 평화를 위해 기도하자. 하루 빨리 우크라이나에 평범한 일상과 평화가 오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무릎을 꿇자. 전쟁하면 몸서리치는 나를 위해서도…







이전화면맨위로

확대 l 축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