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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칼럼]기독교인의 나라와 민족사랑! - 김상열 장로




김상열 장로
(목포남부교회 원로)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하였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기독교인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나라와 민족을 사랑합니다. 부모님께 효도합니다. ‘기독교는 국경이 없으나 기독교인은 국가와 조국이 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바른 신앙을 가진 기독교인들은 조국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고 자신의 민족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인들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애국 운동에 앞장서서 일했고 자유를 위하여 목숨을 바쳤던 것입니다. 기독교는 위협하고 죽인다고해서 없어질 종교가 아닙니다. 한 명을 죽이면 100명이 살아나고 100명을 죽이면 만 명이 살아나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생명이고 본질입니다. 로마가 초기 기독교를 없애려고 별짓을 다했습니다. 죽이고 또 죽였습니다. 그래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자꾸만 증가할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마침내는 기독교가 그 나라에 국교가 되고 만 것입니다. 성경은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성하여 퍼져가니 애급사람이 이스라엘 자손으로 말미암아 근심하였다”(출1:12)라고 하였습니다. 한 번도 남의 나라를 침략하지 않고 온순하고 순진한 우리 민족을 일본이 36년 동안이나 별수단을 다 써서 지배해보려는 과정에서 제일 강하게 부디 쳤던 것이 기독교 정신이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가 있음을 알아야합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과거 암울했던 순간순간마다 우리 선배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목 놓아 불렀던 절규입니까? 어찌 하나님의 구원의 응답이 없었겠습니까? 그러나 이 압박과 환난과 핍박 속에서도 강해지고 성장했습니다.


나라는 ‘국력’ 힘이 있어야합니다. 첨단무기도 필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국민의 정신력입니다. 조국이 통일이 되고 하나 되려면 온 국민이 하나로 단결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유대민족을 단결심을 본받아야합니다. 우리나라 국민은 전쟁 일어났다하면 외국으로 피난가고 도망가지만 이스라엘은 전쟁이 났다 하면 전 세계 이스라엘 민족이 조국으로, 전쟁터로 모여듭니다. 그래서 인구 팔백만 밖에 안 되는 나라가 저렇게 강한 것입니다. 우리는 나라 잃은 뼈아픈 설움을 맛보았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자유를 누리고 잘 살아 갈수 있다는 것이 다행한 일입니다. 오늘 우리는 내 나라, 나의 조국을 사랑하고 생각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뼈아픈 과거의 역사를 우리는 망각하지 말아야합니다. 예수님도 기울어가는 조국의 운명을 바라보시면서 눈물을 흘렸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모르고 예수님의 십자가 행렬을 따르면서 하염없이 눈물짓던 여인들을 향하여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와 네 자녀들을 위하여 울라”고 경고하시기도 했습니다. 그런데도 지금 나라의 지도자들이나 백성들 누구하나 정신 차리지 못 하고 있었으니 얼마나 통곡할 일입니까? 그 결과 예수님 사후 40년 만에 그날은 왔습니다. 기원 70년 로마의 티투스 장군이 이끄는 정벌군에 의하여 예루살렘은 정복되고 말았습니다.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무너져 내릴 것이라던” 주님의 예언 그대로 예루살렘은 산산조각이 난 것입니다.


우리는 그 옛날 암담했던 그때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언어도 역사도 빼앗기고 이름과 민족의 정신까지도 철저하게 유린당했던 그 암울했던 어두움의 역사. 오늘 우리는 조국이라는 것을 생각할 줄 알아야합니다. 자유를 잃은 민족의 참담함. 그래서 쓰라린 과거의 역사를 지닌 민족은 그 삶의 모습이 강한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내 나라만큼은 부강하고 힘이 있고 자랑스러워야 되겠다는 생각을 갖습니다.


오늘 우리는 내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특별히 가져야합니다. 나라를 사랑하는 일은 먼저 기도하는 일입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기도하며 조국통일을 위하여 기도하는 일입니다. 우선 한국교회 일치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나라 근대 역사 가운데서 3.1절이나 8.15해방은 우리 기독교와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역사입니다. 하나님의 섭리가 들어있고 서양에서 건너온 선교사들의 역할도 대단하였습니다. 그리고 기독교의 역할 또한 컸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반드시 이날들을 기념하는 행사를 가지면서 그 뜻을 되새기거나 그 때의 역사를 새롭게 조명해 보는 일을 하게 됩니다. 우리가 3.1절과 기독교를 말하려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연대가 있습니다. 그것이 1885년, 1895년, 1905년, 1907년, 1919년 등입니다. 이 해는 기독교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역사의 마디마디입니다.


제일 먼저 생각 할 연대는 “1885년”입니다. 1885년은 한국 선교가 시작된 아주 귀중한 해입니다. 금년으로 한국 선교 137주년이 지난 한국의 기독교는 그동안 모진 핍박과 환난과 고난 속에서 성장에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1885년부터 1895년까지 10년 동안 이 땅에 신자가 서울에 65명, 전국에는 300여명으로 늘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기독교의 역사에서 1885년은 귀중한 해입니다. 그로부터 10년 후, 1895년 기독교의 역사를 우리는 기억해야합니다. 이때는 한국 기독교 역사에 있어서 가장 큰 획을 긋는 중요한 해입니다. 1895년 이해는 천일전쟁이 끝난 해입니다. 그리고 민비가 살해 된 비극의 해입니다. 또 한국 교회가 정치화 되어갔던 해이기도 합니다. 당시 조선의 국모 민비의 죽음은 기독교뿐만 아니라 우리민족 전체의 비극이며 커다란 충격을 준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한민족의 자존심과 체면을 온통 유린당한 사건이었습니다. 당시 일본이 한국에 파송한 공사는 미우라였습니다. 당시 임금 고종은 우유부단하고 우둔하며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 같은 어눌한 임금 옆에서 임금의 자문 역 활을 민비가 해냈습니다. 이 민비가 연세대학교의 창시자 언더우드 선교사의 부인과 친숙하게 지냈습니다. 부인은 당시 간호원 이었습니다. 어느 날 민비가 언더우드 부인에게 미국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요청하였습니다. 그때 부인이 “미국에는 자동차도 많고 초콜릿도 많습니다. 그리고 미국은 땅도 넓고 한국처럼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다 있어 살기 좋은 나라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듣고 있던 민비가 “그곳에 한번 나도 가보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때 부인이 정중하게 전도를 했다는 것입니다. 부인은 민비에게 그보다 훨씬 더 좋은 나라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곳이 하늘나라입니다. 그곳에는 눈물도 슬픔도 없고 죽음도 없는 나라입니다.” 이 말을 들은 민비는 “나도 그 나라에 가서 살고 싶다”고 큰 관심을 보였다고 합니다. 그로부터 10일 후에 민비는 가서 살고 싶다는 그 나라로 가셨습니다. 일본의 “한일합병”을 위해 방해물이라고 일본 사람 손에 억울하고 비참하게 살해당했습니다. 일본이 한국과 합병을 하려고 하는데 민비가 나서서 조리 있게 똑똑한 말로 반대하며 나섰기 때문에 방해물을 제거하기 위해서 일본의 공사 미후라가 죽인 것입니다. 그때 지은 대표적인 시로 “삼천리반도 금수강산 하나님 주신 동산” 이라는 오늘의 찬송가 가사가 있습니다. 그는 이 가사 가운데서 모두 일어나 일하러 가자고 독려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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