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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칼럼]6.25가 우리에게 준 교훈 - 김상열 장로




김상열 장로
(목포남부교회 원로)





6월이 되면 우리는 가장 먼저 6.25를 생각하게 됩니다. 잊혀진 전쟁이 아니라 잊어서는 안 될 민족의 비극 6.25 한국전쟁입니다. 아-잊으랴! 어찌 우리 그 날을…! 민족의 비극 6.25가 일어난 지 72돌이 되었으며, 휴전이 된지 69주년이 되었으나 아직도 이 전쟁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아직도 유별나게 핵 문제 사건으로 남북관계가 악화되어 70년이 지난 오늘에도 6.25가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그러나 6.25의 비극은 단 한 번으로 끝나야하고 다시는 이 땅에 전쟁은 없어야 합니다. 나라가 침공을 당하고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했고 우리 민족은 하나로 똘똘 뭉쳐 나라를 지켜왔습니다. 우리는 뼈아픈 민족의 비극을 잊을 수 없으며 6.25가 우리에게 준 교훈이 무엇인가를 깨달아야합니다. 언제, 누가, 어떻게 6.25 전쟁이 돌발했는지 우리 민족은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아픈 과거역사를 잊지 말자는 교훈입니다. 1950년 6월 25일 주일 평화로운 고요한 아침 새벽 4시 30분, 날이 세기도 전에 탱크도 없고 전투기도 없던 평화로운 이 땅에 북한 공산당의 탱크, 장갑차, 전투기와 해군 함정이 동시에 침략해 나라의 비극의 참상이 시작된 것입니다. 38선을  넘어 불과 3일 만에 수도 서울을 빼앗기고 정신 차릴 여유도 없이, 막아낼 무기도 방법도 없고 대항해볼 엄두를 낼 참도 없이 속수무책으로 마냥 남쪽으로 부산까지 밀려 내려갔습니다. 하늘을 쳐다보며 하나님 어찌하여 이 나라 대한민국을 버리시나이까? 하나님께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처참한 광경을 보지 않고 당해보지 않은 세대는 모릅니다. 저는 군대를 늦게 1953년에 입대하여 논산훈련소에서 훈련을 마치고 대구정보학교에 가서 교육을 마치고 휴전 직후에 제1사단12연대 연천 최전방 정보병으로 배치되어 40개월 근무하고 제대를 했습니다. 그러나 휴전직후라 포성만 멈추었지 전시와 다름이 없었습니다. 후에 증언에서 밝혀진 일이지만 그때 인민군 최전방 지휘관이었던 사람이 말하기를 “그 전쟁은 방망이로 솜뭉치를 치는 것 같이 쉬었었다”고 말했답니다. 너무나 쉽게 방어선이 뚫려 자신들도 어리둥절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방어력이 당시에 얼마나 허술했음을 알려주는 증언입니다.


6.25의 비극은 해방에 도취해 잠자고 있던 우리 민족을 깊은 잠에서 일깨워주고 크게 교훈을 준 전쟁이었습니다. 불과 한 달 만에 부산만 남은 대한민국 이승만 대통령은 제2차 세계 대전 때 유럽연합군 최고사령관이 되어 로르망디 상륙작전을 성공으로 이끌었던 미국 아이젠하워에게 목이 메어 떨리는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 도와달라고 간청을 했습니다. 따지고 보면 U.N이 한국을 도와 줄 명분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것을 공산당과 자유와 평화를 사랑하는 민주주의 싸움이라 믿고, U.N에서 도와줄 것을 가결하였습니다. U.N군 참전을 반대하려던 소련 대표를 하나님이 차 고장으로 회의에 참석 못하도록 막아주셔서 16개국 연합군과 의료봉사를 포함하여 21개국이 알지도 듣지도 못한 대한민국을 위해 공산당 침공에 참전 할 것을 결의했습니다. 여기에 1944년 군인으로 최고의 직위를 받은 5성 장군 원수로서 일본점령군 최고사령관인 맥아더 장군이 국제연합군 최고 사령관으로 임명됐습니다.


북한공산군은 부산만 남은 남한을 없애기 위하여 그곳에 총력을 다 하고 있을 때 맥아더 장군은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하여 적의 허리를 잘라 먼저 서울을 사수하여 중앙청에 태극기를 꽂고 적을 북으로 평양을 거처 압록강 밖으로 몰아내고 당시 대통령인 트루먼 대통령에게 중국연안 봉쇄와 함께 만주에 원자폭탄을 떨어뜨릴 것을 제의하였습니다. 그러나 트루먼대통령은 완강히 반대했고 고집하는 맥아더 장군을 본국 백악관으로 즉시 소환하여 책망하기를 “너는 전쟁을 지휘하는 장군이지만 나는 너를 통솔하는 대통령이다. 이는 제3차 전쟁이 발생할 수 있는 염려가 있다”하여 완강하게 반대했습니다. 그러나 맥아더 장군 역시 너무 피해가 많은 이 전쟁을 끝내야겠다는 생각과 공산당이 다시는 한반도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결심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고집하는 맥아더에게 군복을 벗을 것을 강요했고, 그때 평생 동안 쌓아 올린 별 다섯 개가 쏟아지며 해임을 당했습니다. 그때 맥아더 장군은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살아질 뿐”이라고 하였습니다. 한국 국민으로서 이분에게 감사드리며 많이 존경스럽습니다. 그는 지혜와 용기가 매우 뛰어난 전략가로 미국 국민의 신망을 한 몸에 받았으며 그의 동상이 인천에 세워져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압록강으로 내몰렸던 적은 중공군과 함께 인해전술로 치열한 전투를 벌였고, 또다시 남으로 밀리고 밀려 내려왔습니다. 이것이 1.4후퇴였습니다.


1953년 7월 27일 10시에 현재 휴전선으로 미국 제34대 대통령이 된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휴전을 하게 하였습니다. 우리 대한민국은 당시 우리 나라를 위해 참전하여 목숨 바쳐 희생하신 분들에게 감사해야하며 그 은혜를 갚아야합니다. 당시 세계에서 제일 못살았던 나라로 도움을 받았던 우리 나라는 반세기 만에 지금 세계 경제 10위권에 드는 잘사는 나라로 기적을 이루어놓았습니다. 오늘의 우리 대한민국이 있기 까지는 참전국과 그분들의 고귀한 희생의 대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참전국가와 그 자손들에게 빚을 갚는 마음으로 은혜를 갚아야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볼 때 처절하리만큼 아픈 환난의 역사를 지닌 나라가 둘이 있습니다. 하나는 이스라엘이고 다음은 우리 민족입니다. 두 나라가 가장 뼈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고 모두 같은 시기에 독립을 하게 된 비슷한 나라입니다. 6.25 전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희생했습니다. 이것이 근대 세계전쟁 역사가운데서 최악의 사상자를 낸 전쟁의 참상입니다. 이참혹한 전쟁이 우리 나라에서 우리 민족에게 그리고 우리 민족끼리 저지른 불행의 역사입니다. 우리 민족의 뼈아픈 비극의 역사를 잊어서도 몰라서도 안 됩니다. 나라가 있기에 나와 내 가정, 내 교회가 있고 지금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살 수 있는 것임을 깨달아 온 국민이 내나라 내가지키고 사랑해야합니다. 오늘의 대한민국은 이 나라 위해 죽음으로 순교하시고 피 흘려 싸우다가 순국하신 선배 선진들의 피 값으로 평안 속에 자유롭게 잘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지금 힘든 일 않고 편히 살려고만 하는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근면절약의 정신이 필요합니다. 우리 민족은 값진 대가를 치름으로써 평화와 자유의 소중함을 체험한 민족이고 나라의 소중함을 경험한 민족입니다. 그리고 6.25는 공산주의가 무엇인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기회였습니다. 이론으로 보여준 것이 아니고. 체험을 통해서 보여주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가 민주주의를 더 빨리 신뢰하고 다져가는데 큰 도움을 주게 된 것입니다. 6.25의 비극이 우리 민족에게 많은 것을 알게 했고 깨닫게 했고 소중한 교훈을 주었습니다. 무엇보다도 6.25를 통해서 우리 민족은 하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가 들어있는 사건이었으며 우리에게 평화의 소중함을 깨닫게 했고 무신론자의 실태가 어떤 것 인가를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씀합니다.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는 그로 말미암아 의와 평강한 열매를 맺는다.” 그래서 고난과 아픔의 역사를 지닌 민족은 과거의 역사를 기억하고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지혜 있는 민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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