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고 유능한 한 유대인 외과의사가 나치스에 의해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수용되었습니다. 그는 가스실과 실험실을 향해 죽음의 행진을 하고 있는 동족들의 행렬을 보면서 머잖아 자기 자신도 가스실의 제물이 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노동 시간이었습니다. 그는 땅을 파다가 흙속에 파묻힌 유리병 조각을 하나 주워서 몰래 바지 주머니에 숨겨가지고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그 날부터 그는 매일 그 유리병 조각의 날카로운 부분으로 면도를 했습니다. 동족들이 차츰 희망을 버리고 죽음을 기다리며 두려움에 떠는 동안 그는 독백하듯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희망을 버리지 않으면 언젠가는 좋은 날이 올 것이다.” 그는 죽음의 극한 상황 속에서 아침과 저녁 두 번씩 꼭 면도를 했습니다. 오후가 되면 나치들이 문을 밀치고 들어와서 유대인들을 일렬로 세우고 그 중에서 그날 처형할 자들을 골라냈습니다. 하지만 유리조각으로 피가 날 정도로 파랗게 면도를 한 외과의사는 차마 가스실로 보내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잘 면도된 파란 턱 때문에 삶의 의지가 넘치게 보였고 아직도 건강해서 쓸모가 있다는 인상을 심어주어 사람들로 하여금 그를 죽이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많은 동족들이 가스실로 보내질 때마다 그는 자신의 비망록에 이렇게 썼습니다. “고통 속에서 죽음을 택하는 것은 가장 쉽고 나태한 방법이다. 죽음은 그리 서두를 것이 못된다. 희망을 버리지 않는 사람은 반드시 구원을 받는다.” 그는 그렇게 해서 나치가 완전히 패망할 때까지 살아남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소망이 있는 자는 인내합니다. 소망을 가진 자는 기다릴 줄 압니다.
다윗은 시편 39편 7절에서 “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다윗은 오직 소망을 살아계신 하나님께 두었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다윗은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은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낙망하지 않습니다. 흔들리지 않습니다. 요동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참아냅니다. 인내합니다. 왜요? 오늘 우리가 소망을 두고 있는 하나님은 강하시거든요. 전능하시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