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전한 시민정신과 교양은 복음전도에 힘을 실어줍니다. 기독교 용어를 정리하여 소개합니다.
‣당신→하나님,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 아버지, 당신의 은총으로…”와 같이 하나님을 ‘당신’이라 부르는 것을 종종 보는데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우리말 2인칭 ‘당신’은 결코 존대어가 될 수 없다. ‘당신’이란 호칭은 안 된다.
‣기도드렸습니다(기도하였습니다)→기도드립니다(기도합니다). 기도를 끝낼 때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와 같이 동사 ‘기도하다’의 시제를 현재형으로 써야 하는데 요즈음 이를 ‘기도하였습니다’, ‘기도 드렸습니다’와 같이 과거형을 쓰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므로 기도의 마무리는 과거가 아닌, 현재로 끝내는 것이 옳다. ‣주여, 하나님 아버지시여→주님. 하나님 아버지 기도할 때 하나님을 향해 ‘주여’, ‘주님이시여’, ‘하나님이시여’, ‘하나님 아버지시여’라 부르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어법상의 문제가 있다. ‘-아’나 ‘-야’가 붙을 수 있다. “아버님이시여”, “할아버님이시여”라 부르는 것은 불가하다. 그러므로 ‘주님’, ‘하나님’, ‘하나님 아버지’로 해야 옳다.
‣대표기도→기도 인도. 예배 순서 가운데 온 회중이 머리를 숙여 무언의 기도를 할 때 한 사람이 소리를 내어 기도를 할 경우 우리는 이를 ‘기도 인도’라 부르는 것이 좋다. 기도 인도자는 기도의 대표자가 아니다. 그러므로 ‘대표기도’, ‘대신하여 기도…’는 ‘기도 인도’로 바꾸는 것이 바람직하다.
참 좋으신 하나님→거룩하신, 전능하신…하나님. 즉 성경에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내는 수식어로 쓰인 말들을 보면 ‘거룩하신’, ‘만유의’, ‘생명의’, ‘신실하신’, ‘의로우신’ 등과 같이 대부분 객관적으로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내는 말들이 쓰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참 좋으신’은 이를 과장하여 발전시킨다면 ‘사랑스러운 하나님’(‘사랑의 하나님’과는 판이한 뜻이 된다.), ‘미운 하나님’, ‘야속한 하나님’, ‘귀찮은 하나님’ 등도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 예배·예식 분야
‣사회자→인도자(예배 시). 사회라는 말은 회의나 의식을 진행하는 일이라는 뜻을 갖고 있으며, 우리의 문화권에서는 사회자라고 하면 마땅히 일반 회의의 진행자를 의미한다. 교회에서도 하나님을 중심으로 한 예배가 아닌 결혼예식이나 임직식 같은 인간 중심의 의식에서는 진행을 맡은 사람을 사회자라 부를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을 향한 예배의 현장에서 사회자라는 명칭은 경건성의 결여를 느끼게 하므로 예배 인도자로 부름이 타당하다.
‣성가대→찬양대. 실제로 1960년대까지 우리 한국 교회는 찬양대라는 이름이 통용되었고 성가대라는 이름은 없었다. 성가라는 말은 불교를 비롯하여 모든 종교에서 부르는 노래이며, 우리의 ‘찬양’이라는 용어는 하나님을 향한 예배의 행위에 속한다.
‣대예배→주일 예배. 예배는 하나님께서 창세 이후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구속의 크신 사랑을 깨달은 자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와 감사함으로 응답하는 행위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와 예배드리는데 있어서 큰 예배가 있고 작은 예배가 있을 수 없다. 예를 들어 주일 예배라든지, 주일 저녁(오후) 찬양 예배라든지, 혹은 시간에 따라 1부 예배, 2부 예배라고 부르는 것은 가능하다고 본다.
‣기도로 폐회합니다.→기도로 예배를 마치겠습니다, 기도로 기도회를 마칩니다. 예배는 어느 경우나 00회가 아님을 분명히 새겨둘 필요가 있다.
‣열린 예배→열린 집회. 열린 예배가 교회에 처음 나온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라면, 이것은 엄밀하게 따져서 예배라기보다는 “전도집회”이다. ‘열린’이라는 용어보다는 ‘젊은이 예배’ 혹은 ‘찬양 예배’ 등으로 사용하고, 열린 예배라는 용어는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찌어다, 있을 지어다.→축원합니다. 축원하옵나이다. 축도란 축복기도를 줄인 단어이며 축복기도의 의미는 예배가 끝날 무렵 목사가 성부, 성자, 성령에게 모든 신도들의 복을 하나님 아버지께 구하며 비는 기도인데, ‘…할찌어다’ 명령사가 되어야 되겠는가? ‘…찌어다’하는 말은 오직 예수님 자신과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만 하실 수 있는 말이다.
‣복을 받을 찌어다.→복을 받을 것이다. ‘복을 받아라’의 뜻이라면 복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의 종 목사가 복을 줄 수 없기에 성도들의 복을 하나님께 구하는 기도 ‘축도’이기 때문에 명령어가 아닌 구원 요청어로 ‘축원합니다’ 해야 한다. 복을 줄 수 있는 분은 하나님 한분뿐이다.
‣예배 봐준다.→사용불가. ‘개업예배를 봐준다’, ‘구역예배를 본다’는 표현을 하는 것을 들을 수 있다. 예배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건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대한 우리의 응답 행위이다. 예배 신학적으로 볼 때에 받아들일 수 없는 잘못된 용어이다. 그러나 요 지음 코로나로 인해 각자 있는 곳에서 영상으로 ‘예배를 보는’ 사람이 교인 50%가 넘고 있다.
‣평신도→ 신도, 성도. 평신도란 카톨릭에서는 사제(신부) 외는 다 평신도라고 불렀다. 예수를 구주로 믿는 우리 개신교에는 모두 성도, 신도이다. 목사, 장로, 권사, 집사의 직분을 주었다. 그러므로 개신교에는 평신도란 없다.
‣준비찬송→사용불가. 찬송은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하는 곡조가 있는 시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드려야 할 찬송을 시간을 메우기 위한 수단이나 자리를 정돈하는 데 필요한 수단으로 간주하는 ‘준비찬송’이라는 용어는 마땅히 사용해서는 안 된다.
‣예배·예식·기도회→구별사용. 한국교회는 어느 나라의 교회보다 모이기에 힘쓰는 교회이다. 심지어는 돌, 회갑, 추모 등의 모임에도 예배라는 명칭을 붙임으로써 진정한 예배의 의미를 희석시키고 있다. 그러므로 이제는 예배와 예식과 기도회를 분명히 구분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돌, 회갑, 추도, 입학, 졸업, 결혼, 입당, 임직, 교회 창립 등의 행사를 할 경우에는 예식으로 표현하고, 예배와 혼동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기도를 목적으로 모이는 수요저녁모임과 금요철야 혹은 심야모임, 그리고 매일 새벽모임 등은 수요기도회, 금요기도회, 새벽기도회 등으로 명시해야 한다.
‣헌금→봉헌. 한국 교회의 예배 순서 가운데 헌금이라는 용어를 쓰는 경우가 있다. 이 순서는 원래 봉헌을 말하는 것이다. 봉헌은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될 때 정성을 다하여 경청한 무리들이 스스로 우러나는 감사의 응답으로 내어놓는 모든 마음과 정성의 표현이다. 헌금이라는 용어로, 즉 단순히 돈을 바치는 행위로 지칭하는 것은 봉헌의 의미를 아주 축소시키는 것이다.
‣하나님의 축복 → 하나님이 주신 복,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 하나님! 복 주시옵소서. 하나님은 복 주시는 분이지 축복하시는 분이 아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축복하여주옵소서’는 틀린 말이다. 축복은 사람들끼리 하는 것이다. 하나님 외 어느 신도 복을 줄 수 없다. ‘하나님! 축복하여 주시옵소서’와 같은 표현들을 볼 때 하나님이 인간을 위하여 복을 비는 존재로 간주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러나 여기서 유의해야 할 것은 하나님은 복의 근원이시라는 사실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점이다. 다음의 성구에서는 하나님이 복을 비는 분(축복)이 아니라 복을 주시는 분(강복)임을 잘 밝히고 있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 지라(창12:3)”. “그가(멜기세덱)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창14:19)”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 복 주시옵소서” 또는 “복 내려(베풀어) 주시옵소서”로 바로잡음이 타당하다.
‣우리 성도들이→ 저희들이, 교회의 권속들이. ‣지금도 살아계신 하나님→ 사용불가. 영원히 살아계시고 능력이 있으신 하나님께 지금도 살아있다는 표현은 언젠가는 살아있지 못하다는 용어이기에 사용불가.
‣중보기도→중보적기도, 이웃을 위한 기도. 기독교에 중보라는 말은 오직 예수그리스도에게만 해당하는 말이다. 그리스도의 영광을 훼손하는 것이다.
‣축제→잔치.
‣예수공로 의지하여 기도합니다.→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영결식, 고별식→장례예식. 인간이 세상을 떠났을 때 진행하는 예식을 칭하는 용어로서 ‘영결식’, ‘고별식’, ‘발인식’ 등 다양한 명칭이 있다. 영결식은 ‘영원히 이별한다’는 뜻이며, 고별식은 ‘작별을 고한다’라는 뜻이다. 그러나 기독교에서는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는 교리와 부활의 신앙을 가지고 있기에 이러한 표현은 적당하지 못하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하나님의 위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부활의 소망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고인의 명복이란 표현은 우리의 장례문화에서 오랫동안 사용해온 용어이어서 자연스럽게 유족들에게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인사를 한다. 명복이란 용어는 우리기독교에서 사용하기에는 적당하지 않다. 이 말은 불교의 전용어로서 불교신자가 죽은 후에 극락에 가게 되기를 바란다는 불교의 내세관에서 통용되는 용어이다. 冥福(명복)이란 이 한자 冥는 ‘어두울 명, 마귀 명’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는 ‘고인이 저승으로 가기를 빕니다’라는 뜻이기에 기독교 용어로는 맞지 않다.
∎ 오직 말씀을 따르라
딤전6:3-5은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을 따르지 아니하면 그는 교만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비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 버려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복주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복주시기를 원합니다. 애독해 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