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문제는 언제나 하나님을 떠나면서 시작이 됩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생은 하나님의 진노 속에 머물며 비극의 인생을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삶은 하나님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존재인데도 우리는 스스로 잘 살수 있다고 착각을 하고 살아갑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한순간도 살 수 없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이 특별히 선택한 이스라엘은 하나님만 섬겨야하는 민족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들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가나안의 우상 섬기는 데만 열중을 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품을 떠난 저들에게 결코 좋은 일이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저들에게 당장 진노하지 않으시고 예레미야 선지자를 보내어 회개를 촉구하셨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처한 상황은 매우 어렵고 절박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심장을 가지고 이스라엘 백성 앞에 선 예레미야는 유다의 죄악을 통렬히 지적하면서 그들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형식적인 종교행위가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내적 변화를 촉구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저들에게 내게로 돌아오라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내게로 돌아오라는 것은 다시 만나자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자신을 배신하고 떠나버린 인생을 향해 내게로 돌아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참된 방향전환이 있는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1. 우상을 버려야 합니다. 본문 1절에 '가증한 것'은 우상을 의미합니다. 구약시대의 이스라엘이 범한 우상숭배는 이방 나라의 신들을 섬기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하나님으로 섬기는 죄를 범했습니다. 우상숭배는 하나님이 가증하게 보시는 죄입니다. 이 우상숭배는 신약시대로 넘어오면서 그 의미가 광범위해졌습니다. 외형적인 우상을 섬기는 것에서 이제는 하나님보다도 더 사랑하는 모든 것이 우상임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보다 명예를 사랑하는 것도 우상숭배입니다. 세상을 더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는 것도 우상숭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골로새서 3장 5절에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요일2:15) 우리의 사랑의 우선순위의 대상은 오직 하나님 한 분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섬겨야 될 우선순위의 대상은 오직 하나님 한 분밖에 없습니다. 우상을 섬기는 자들은 오늘 본문에 보면 마음이 요동하는 자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마음의 심지가 곧지 않고 수시로 흔들리는 사람은 모두가 싫어합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요동하는 사람을 미워하십니다. 이렇게 요동하는 사람은 주님께 아무 것도 얻지 못합니다. 야고보는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약1:6-8)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모든 것은 우상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우상으로부터 돌아서야 합니다. 하나님만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믿음을 회복해야 합니다.
2. 묵은 땅을 갈아엎어야 합니다. 본문 3절에 "나 여호와가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에게 이같이 이르노라 너희 묵은 땅을 갈고 가시덤불 속에 파종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농사 이치를 통해서 저들을 부르고 계십니다. 농사를 짓는 데는 여러 가지 조건이 맞아야 합니다. 첫째는 토양이 좋아야 합니다. 그리고 다음에는 좋은 종자가 있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좋은 기후조건이 있어야 합니다. 적당한 비와 햇빛이 비추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는 이 모든 것이 갖추어졌다 해도 농부가 부지런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농부의 수고가 있어야 많은 것을 거두어들일 수 있습니다. 농사는 이와 같이 여러 조건이 필요하지만 그 중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좋은 토양입니다. 옥토와 같은 땅이 필요한 것입니다. 마태복음 13장에 보면 여러 가지 토양이 있지만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거둘 수 있는 땅은 옥토였습니다. 우리의 마음 밭이 이렇게 옥토로 있을 때 하나님의 축복의 열매를 많이 거둘 수 있음을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이 안 되는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의 신앙이 성장하지 못하고, 축복의 열매를 거두지 못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단단히 굳어져 씨가 들어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편견, 교만 등이 자신의 신앙을 죽이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묵은 땅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는 닫혀 진 인간의 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습관화되어지고, 방종과 사치와 거짓과 시기심으로 가득 찬 인간의 마음을 말합니다. 죄로 굳어지고 병들어진 영혼을 의미합니다. 이 묵은 땅에는 가시덤불이 있다고 했습니다. 가시덤불은 마태복음에서는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마13:22)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가시덤불이 가득한 묵은 땅은 아무 쓸모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너희 묵은 땅을 갈아엎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자아를 부정하고 하나님의 말씀만 순종할 부드러운 마음을 가지기 위해서 묵은 땅을 갈아엎어야 합니다. 호세아 10장 12절에서도 "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의를 심고 긍휼을 거두라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마침내 여호와께서 임하사 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런 변화가 있기를 바랍니다.
3. 참된 회개를 해야 합니다. 본문 4절에 "유다인과 예루살렘 거민들아 너희는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너희 마음 가죽을 베고 나 여호와께 속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 행악을 인하여 나의 분노가 불 같이 발하여 사르리니 그것을 끌 자가 없으리라"고 하였습니다. 할례는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언약의 관계를 맺은 하나의 상징입니다. 너는 내 백성이라고 하는 하나의 싸인 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남자아이들은 태어난 지 팔일 만에 할례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단순히 할례의 의식을 통해서 자동적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축복의 백성이 된 것으로 착각하게 되었습니다. 외형적인 행위로 모든 것이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 선지자는 너희 마음 가죽을 베라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참된 회개를 촉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종교적 외형만을 가지지 말고 마음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마음의 변화요, 인격의 변화요, 가치관의 변화이며 삶의 변화인 것입니다. 로마서 2장 29절에서도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3장 2절에서도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손 할례 당을 삼가라"고 하였습니다. 손 할례 당이란 말은 몸을 상하여 할례한 것을 자랑하는 당파를 말합니다. 육적인 할례를 자랑삼는 자들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외형적인 모습을 보지 않습니다. 우리의 마음속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참 마음을 보시는 것입니다. 요엘 선지자도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 올 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욜2:13)라고 외쳤습니다. 우리도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지는 예배, 기쁨과 감격의 예배가 아니라 주일날이라서 어쩔 수 없이 끌려나오는 신앙생활이라면 우리는 마음을 찢어야 합니다. 참된 회개는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바뀌어야 합니다.
지금 온 지구촌이 코로나 팬데믹 상황을 거치면서 외로움과 절망 속에서 하루하루 사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만이 답입니다. 인간생사화복의 답이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하나님과 멀어졌던 거리를 좁히고 다시 믿음의 자리, 다시 예배의 자리, 다시 기도의 자리, 다시 사랑의 자리, 다시 사명의 자리로 돌아가야 합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 너희는 내게로 돌아오라고 초청을 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 돌아가기 위해서는 우리는 우상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의 단단히 굳어버린 묵은 마음을 갈아엎어야 합니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참된 회개가 동반되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초청에 겸손한 마음과 회개하는 마음으로 나아가 하나님이 주시는 신비스러운 복을 받게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