맏아들은 밭에 있다가 돌아와 집에 가까이 왔을 때에 풍악과 춤추는 소리를 듣고 한 종을 불러 이 무슨 일인가 물은대 대답하되 당신의 동생이 돌아왔으매 당신의 아버지가 건강한 그를 다시 맞아들이게 됨으로 인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았나이다 하니 그가 노하여 들어가고자 하지 아니하거늘 아버지가 나와서 권한대 아버지께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누가복음 15:25~32)
현대인들은 탐욕과 이기심으로 재물을 쌓기 위해 동분서주합니다. 마치 아프리카의 야생동물이 떼를 지어 있다가 한 마리가 뛰기 시작하면 영문도 모르면서 무작정 뛰는 모습과도 같습니다. 무슨 목적으로 돈을 벌어야 하는지 모르고 정신없이 돈을 벌기 위해 치닫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의 가치관은 물질중심의 가치관에서 관계중심의 가치관으로 변해야 합니다. 본문은 탕자 비유의 속편(續篇)입니다. 어떤 아버지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작은아들이 재산을 상속받아 허랑방탕하다가 모든 것을 소비한 후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버지는 기뻐하면서 잔치를 벌이지만 일터에서 돌아온 큰아들은 화를 내며 집으로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작은아들은 쾌락을 위해 ‘물질을 사용함으로’ 행복을 찾으려 했고, 큰아들은 ‘물질을 쌓아둠으로’ 행복을 찾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물질보다 가족관계를 중시하는 가치관을 심어주었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넉넉하게 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풍성하신 분입니다. 우리의 필요를 따라 넉넉히 주시는 분입니다. 둘째아들이 자기 몫을 달라고 할 때도 넉넉히 주셨고, 큰아들에게도 “내 것이 다 네 것”이라고 했습니다. (출애굽기 19:5, 학개 2:8)
둘째, 하나님은 용서해 주시는 분입니다.
큰아들은 동생을 용서하지 못하고 화를 냈지만 아버지는 용서하며 환영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죄를 지었을지라도 회개하고 돌아오기만 하면 용서해 주십니다. (누가복음 15:20, 마태복음 18:22)
셋째, 하나님은 위로하고 권면하시는 분입니다.
큰아들은 돌아온 동생을 위해 잔치를 벌이는 것에 불만을 품었지만, 아버지는 둘째아들도 환영하고, 큰아들에게도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다”라는 말로 위로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환영하고 위로하시는 분입니다. (누가복음 16:31, 예레미야애가 3:22)
성도 여러분!
우리는 ‘청지기’ 즉, ‘피소유주 경영관리인’입니다. 둘째아들처럼 자신을 위해 물질을 낭비하거나 큰아들처럼 물질을 무조건 쌓아두는 것이 옳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필요할 때 넉넉히 주시는 분으로 인정한다면 물질을 모으는 것도 하나님의 영광의 위해, 물질을 사용하는 것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물질을 사용하거나 모은 목적은 어디에 있었습니까? 물질보다 인간관계를 더 소중하게 생각하십니까? 둘째아들처럼 자신만을 위해 물질을 사용했거나, 큰아들처럼 자신만을 위해 물질을 쌓았다면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바르게 벌고 바르게 사용하기는 선한 청지가 되어서 하나님께서 더 많은 것을 맡겨주시는 은혜를 누리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