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9월 21일 자 <아름다운 신문 기독타임스> 8쪽 좌상단의 서철원 박사의 기고문 중 일부를 인용하여 보겠다. “바르트가 말하는 영원은 시간 너머에 있고 종말에 도입되는 것이 아니라 시간 안에 있습니다. 시간 안에 있는 영원은 바로 순간입니다. 순간이 영원이므로 종말도 없습니다. 영원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통일입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통일은 순간입니다. 그러므로 순간이 영원입니다. 칸트가 바르트의 신학 체계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바르트가 말하는 구원은 전통적인 신학에서 말하는 구원이 아닙니다. 전혀 생소한 구원관이 등장하였습니다. 피조물들이 하나님의 존재에 동참하는 것을 구원이라고 말하고 또 그것을 화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존재에 동참하는 것은 피조물들의 한계를 벗어나서 하나님의 존재에 동참하면 결국 사람이 신이 되는 것에 이르겠지요.”
“그러나 바르트 신학에는 사람이 신이 되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피조물의 한계를 벗어나서 하나님의 존재에 동참하는 것을 구원이라고 하는 바르트의 주장은 교회교의학 전반부에서 열심히 주창되었습니다. 그러나 4책의 1권에 가면 전혀 말이 달라집니다. 피조물이 하나님의 존재에 동참하는 것이 실제로 일어날 수 없음을 바르트는 알아차렸습니다. 그가 무슨 힘이 있어서 자기의 신학으로 사람들을 하나님의 존재에 동참시킬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존재에 동참은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데 있어서 우리의 존재가 완전해지는 것이라고 말을 바꿉니다. 그러면 피조물의 한계를 벗어나서 하나님의 존재에 동참하는 것이란 주장은 완전히 거짓 것이 됩니다.”
신학자 루돌프 불트만(1884-1976)은 신정통주의 신학자로서, 1903-1910년 튀빙겐, 베를린, 마르부르크 등에서 신학 연구 후 학위를 취득하였으며, 1921-1951년 마르부르크 대학 교수로 재직하였다. 불트만은 성경의 비신화화(非神話化)를 주장한 신학자다. 그의 저서 <예수 그리스도와 신화> 20쪽과 21쪽에서 발췌하여 본다. “현대인들에게 있어서 종말, 구속자, 구원 등의 개념은 신화론적인 세계관으로서 이미 지나간 버린 것이고 폐기 처분 된 것이다.”(20쪽에서 발췌)
“신화적인 개념들 배후에 있는 보다 깊은 의미를 나는 비신화화이라고 부른다(물론 만족스러운 용어는 아니지만). 비신화의 목적은 신화론적인 진술들을 제거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해석하는데 있다.”(21쪽에서 발췌)
박형용이 지은 <성경해석의 원리> 243쪽 ‘불트만과 비신화화의 허점’ 중 일부를 인용하여, 루돌프 불트만의 비신화화와 불트만의 자유주의 신학에 대한 비판에 대해 좀 더 알아보자. “불트만의 비신화화 작업은 자유주의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생겨났다. 불트만은 자유주의자들이 성경에서 비과학적인 내용은 버리고 납득할만한 것은 택하는 방법은 마치 목욕물을 아이와 함께 버리는 잘못과 같다고 비판하다. 왜냐하면 성경의 기본적인 메시지는 고대 세계의 사상 형태로 표현되어 있는데 자유주의자들은 성경의 메시지와 그 메시지가 표현되는 방법도 함께 제거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불트만은 성경의 메시지가 신화적으로 표현되어 있기 때문에 신화적인 것과 비신화적인 것을 구분하기는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한다고 말한다. 불트만은 성경의 사상이 신화적인 방법으로 표현되었다면 그 모든 것을 버릴 것이 아니라 신화로 표현된 진리를 찾아 비신화적인 형태로 설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