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기술의 발전⋅계몽주의⋅경건주의⋅낭만주의 등이 자유주의 신학 형성에 영향을 주었다. 구체적인 논의는 이 글의 범위를 벗어나므로, 더 이상 논의하지는 않겠다.
자유주의자들에게는 기독교의 속성을 나타내는 영생⋅천국⋅지옥⋅그리스도의 재림⋅심판과 같은 용어들이 미신적인 용어들로 들릴 것이다.
선교사인 부모를 따라 중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소설 대지(大地)로 유명한 펄 벅(1892-1973)은 자유주의적인 신앙을 가졌던 사람이다. 펄 벅은 자신의 신앙을 다음과 같은 말로 표현했다.
“미국 선교사들이 중국에서 미신적 교리들과 신학 이론만을 가르침으로써 중국 사람들의 생활을 비참하게 만들었다. 장로교단의 교리를 다 믿지 않고 있으며 인간의 원죄로 말미암은 타락론을 믿지 않는다.”
펄 벅이 말하는 ‘미신적 교리들과 신학이론’은 정통 기독교 교리를 말하는 것이다. 자유주의 신학 사상은 기독교가 우리나라에 들어 온 지, 20여 년 후에 우리나라에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였다.
목회자를 양성하는 신학교로 침투한 자유주의 신학 사상이 이제는 교회로도 침투를 시작하여, 일부 교회에서는 신학자를 초청하여 진화론을 설교하고,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는 종교다원주의를 암시하거나 주장하는 성경공부 교재가 교회로 침투하고 있다.
특정 신학사상으로서의 자유주의 신학은 유럽에서는 제일차 세계대전 시까지, 미국에서는 1929년 경제대공황 이후로 쇠퇴하였다.
신정통주의 신학:
신학자 칼 바르트(1886-1968)는 신정통주의 신학을 시작한 신학자로서, 그의 유명한 <로마서 주석>을 통하여 자유주의 신학을 통렬히 비난하였으며, 자유주의 신학을 넘어뜨리는데 크게 공헌하였다. 그러나 바르트는 성경 자체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바르트는 성경 자체는 인간의 오류가 들어 있는 인간의 글이지만, ‘성령이 역사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김의환 저 <도전 받는 보수 신학> 14쪽을 인용함으로써 바르트가 믿는 바를 알아보자.
“그러나 그(칼 바르트)의 신학은 역시 그가 더불어 싸운 자유주의 신학에 못지않는 결점을 내포하고 있다. 계시관에 있어서 바르트는 큰 오류를 범하고 있다. 자유주의 신학이 역사적 차원만을 강조하는 데 반하여 바르트는 초역사적 차원을 강조하는 경향으로 기울었다.”
“그의 이와 같은 경향은 예수님의 부활 사건 설명에서 드러난다. 1962년 바르트가 미국 프린스턴 신학교에 가서 특강을 하는 중 한 신학생으로부터 ‘예수님의 부활을 신문 기자가 취재할 수 있는 것으로 믿는가?’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그는 부정적인 대답을 하였다. 그렇다고 그가 주님의 부활을 전적으로 부인한 것은 아니다. 다만 역사적인 부활이 아니라 참 역사적인 부활이란 이야기다. 여기에 바르트 신학의 매력이 있고 위험성이 있다. 성경이 말하는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똑같은 분이시며 바르트가 주장하는 역사와 참 역사의 구별도 성경에서 찾아볼 수 없다.“
칼 바르트는 자유주의를 앞문으로 몰아내고, 뒷문으로 받아들인 신학자이다. 말하자면 신정통주의는 정통처럼 보이는 옷을 입은 자유주의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