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부총회장 당선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먼저 부족한 저에게 교단을 섬길 수 있는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그리고 북교동교회 설립 100주년을 앞두고 북교동교회가 교단을 섬기는 것을 영광으로 알고 기쁨을 가지고 물심양면으로 후원해주시고 기도해주신 북교동교회 성도님들과 장로님들께 감사드립니다. 또한 저를 추천해주신 전남동지방회에 감사드립니다.
동시에 ‘법과 원칙이 통하는 바른 교단으로 만들어 가라’는 하나님의 뜻이라 생각하니 거룩한 두려움을 갖기도 합니다.
2. 한국교회가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현격한 교인 수 감소로 힘든데 작금에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하여 예배 환경의 변화 등 교회 환경이 너무 어렵습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지금만 어렵다고 생각하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신앙의 선배들은 이보다 더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십자가의 길을 갔으며 부활의 영광의 아침을 만났습니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코로나 펜데믹으로 교회가 고통 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저는 이 코로나를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바로 신앙의 본질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안타깝지만 지금의 많은 교회 안에는 본질이 사라지고 비본질적인 것들이 너무 많이 들어와 있습니다.
부흥은 인간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됩니다. 교회의 본질 회복이 시급합니다. 초대교회가 생명력 있었던 것은 말씀과 기도가 중심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성령충만 했습니다.
오늘의 이 상황을 극복하는 것도 성령의 능력으로만 가능합니다. 우리가 본질인 말씀과 기도를 회복할 때 다시 부흥을 주실 것입니다.
3. 부총회장으로서 출마한 배경과 각오는 무엇인가요?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바른 교단이 되는 것입니다. 법과 원칙이 바로 지켜지고 세워져야 합니다. 우리 교단이 성결교단입니다. 그래서 2020년 표어의 전반부가 “나부터 성결”이었습니다. 저는 방향은 맞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나 자신에게 적용하지 않고 ‘너부터 성결하라’고 남에게 적용시키려고 합니다.
저는 모든 교단의 고질적인 문제 중의 하나가 불법과 탈법 그리고 선거문화라고 생각합니다. 세상도 투명해지고 있는데 교회는 점점 더 불법과 탈법이 기세를 부리고 있고 심지어 돈 선거로 얼룩져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행정의 비대화로 교인들의 헌금이 너무 많이 엉뚱한 데로 빠져나가고 있습니다. 지난 20년 동안 교단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이유는 그래도 교단의 내밀한 것까지 몸으로 체득한 저에게 이것을 바로잡으라고 기회를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4. 고통당하는 지교회와 함께 하겠다며 다음세대와 교단 안의 어려운 교회와 농어촌 교회를 세우는 일에 앞장서겠다고 하셨는데, 자세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우리를 목회자로 부르시는 분도 하나님이시고 파송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저도 목포에서만 목회를 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저를 이곳으로 보내셨기에 제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모든 목회자는 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보내신 곳에서 사명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 지체의식을 가지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 고군분투하시는 분들을 돕는 것은 마땅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다른 교단과 마찬가지로 저희 교단도 예외가 아닙니다. 3,000여 교회 중 미자립교회가 70% 정도 됩니다. 그만큼 열악한 환경 속에서 많은 목회자들이 오직 사명 하나로 그 어려움을 감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먼저는 교단 100대 교회가 미자립교회 1개를, 그리고 200대-300대 교회는 두 교회가 1개 교회에게 최소한의 생활비를 감당해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세상말로 어려운 교회를 입양하는 것입니다. 이 운동을 현(現) 총회장님과 지속적으로 진행할 것입니다.
그리고 농어촌교회의 잉여 농수산물을 도시교회와 연결하여 실제적으로 도움이 되도록 할 것입니다. 기존의 방식과 다른 점은 총회차원에서 예를 들면, 저희 교단의 국내선교위원회에서 교단 홈페이지에 앱을 설치해 거기에 올라온 상품을 필요한 교회와 연결하므로 지속적으로 관리해 주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해당교회의 목회자가 도움을 주는 교회를 상대하다 보니 장사꾼처럼 되어 목회자의 품위에 손상을 주기도 했고 단발성으로 그쳐 지속적이지 못했습니다.
5. 목회를 하게 된 동기와 목회비전은 무엇인가요?
초등학교 5학년 때 저도 모르게 서원한 내용이 있습니다. 빌리 그래함 목사님이 전도집회하시는 장면을 흑백 TV로 보면서, 저도 모르게 두 손을 불끈 쥐면서 목회자가 되겠다고 서원했습니다. 지금도 그 영상이 머릿속에 남아있는데, 하나님께 “저도 빌리 그래함 목사님 같은 전도자가 되겠습니다. 저를 써주세요”라고 서원했습니다. 그리고 현재 부산대연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임석웅 목사님이 저의 친구인데, 그 당시 아버지이신 임현수 목사님이 저희 교회 13대 담임 목사님이셨습니다. 그 가정을 보면서 목회자 가정이 좋아보였고, 그래서 목회의 길로 가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저는 군대에 가기 전에 서울신대로 바로 입학 한 것이 아니라, 먼저는 장로교 신학교에서 1년을 마쳤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서원은 했지만, 고등학교 때 반항도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 겉으로 본 목회자의 아름다운 모습과 제가 더 철이 들어 내막을 본 목회자의 모습이 많이 달랐습니다. 정말 힘들고 어려운 길이라는 것을 안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 중직자들의 위선적인 모습을 보면서 목회를 안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한쪽에서는 목회자가 되어야 하지 않겠냐는 마음이 있어 갈등하게 된 것입니다. 목회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은 군대에 들어가서 가서 더 굳어졌습니다.
그러나 군대를 전역한 1982년 하나님께서 저를 다시 부르셨습니다. 진로를 놓고 고민하며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저를 강하게 부르신 환상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초등학교 5학년 때 두 주먹 불끈 쥐고 서원했던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회개의 영이 임하였고 저는 그 날 눈물 콧물 쏟아가며 회개했습니다. 전역 후에 6월부터 공부해서 서울신대 신학과에 들어갔고, 그 뒤부터는 마음의 변함없이 목회의 길을 잘 걷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목회자로 저를 붙잡아 두시지 않으면 제가 엉뚱한 길로 갈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저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셔서 저를 붙잡으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전적인 하나님의 부르심이었습니다. 제가 하나님께 바로 순종하지 않으니까 제가 하려는 모든 일들을 다 막아버리시고 결국 이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저는 매일 아침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가 있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을 최고로 기쁘시게 해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 중심에 서서 하나님께 영광 올려드리겠습니다.” 그래서 새벽 기도회 시에도 교인들이게 한 목소리로 고백하게 하는 것이 있습니다. “미래가 온다. 5년 후를 기대한다. 나도 할 수 있다. 상위 1% 교회, 상위 1% 성도,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 중심에 서게 하소서. 하나님을 최고로 높여드리게 하소서. 사도행전 29장 교회를 세우고 이루어 하나님께 영광돌리게 하소서!”
저의 목회철학은 “오고 싶은 교회, 은혜가 쏟아지는 교회, 행복한 교회”입니다. 첫째, 교회는 오고 싶어야 합니다. 삶의 중심에 교회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매일 한 번은 교회에 자발적으로 나올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둘째, 교회 오면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먼저 은혜 받은 사람들을 통해서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교회 오면 서로 인정해주고, 위로해주고, 격려해 주므로 자존감이 회복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설교자는 설교를 잘해야 합니다. 저는 설교자란 말씀의 셰프(요리사)라고 생각합니다. 원재료의 맛을 최대한 살리며 각 재료들이 조화를 이루어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 성도들의 입에 넣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추상적인 설교를 싫어합니다. 스펄전 목사님처럼 오감에 호소하는 설교를 하려고 애를 씁니다. 셋째, 교회 와서 행복 해져야 합니다. 먼저는 내가 행복하고, 행복한 내가 가정에 가면 가족 구성원들이 나로 말미암아 행복해져야 합니다. 직장에 가면 내가 다니는 직장 동료들이 행복해지도록 행복 바이러스가 되어야 합니다.
6. 목회 근간으로 삼은 성경 말씀과 찬송은 무엇인가요?
제가 목회 근간으로 삼은 말씀은 이사야 43장 1-3절입니다. 또한, 찬송은 새 찬송가 288장(통 204장) “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입니다.
7. 섬기시는 북교동교회를 소개하고 자랑한다면?
자랑할 것이 너무 많은 교회입니다. 그 중에 두 가지만 소개하겠습니다.
첫째가 사람 자랑입니다. 특히 97년의 역사 중에 네 분을 소개하고 싶은데 첫째는 초대 교역자이신 장석초 목사님이십니다. 부자 집 아들로 태어난 장석초 목사님은 중생 체험이 분명했기 때문에 재산을 팔아서 나눠주고, 목회자의 길을 걸으셨던 분입니다. 그런데 당시 아현동에 있던 경성성서학원에서는(서울신학대학교 전신) 장석초 목사님의 입학을 거절했습니다. 부자집 아들이 힘들고 어려운 이 길을 갈 수 있겠느냐며 교수회의에서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 중생의 경험이 분명하고, 의지도 분명하기 때문에 학교에서 입학시켰습니다. 졸업하신 뒤에 저희 교회로 파송 받아 오셔서 북교동교회 1대 목회자가 되셨습니다. 둘째는 2대 김응조 목사님으로 신유의 경험이 분명하신 분입니다. 김응조 목사님은 8가지 병을 앓다가 이곳으로 오셨습니다. 그분은 학자이시기도 하지만, 교회와 유달산의 한 기도장소에서 기도하시다 보름 만에 병이 치유될 정도로 신유 경험이 분명하신 분입니다. 셋째는 3대와 9대 담임목사님이셨던 성령의 불 이성봉 목사님이십니다. 이성봉 목사님처럼 강력하게 성령사역을 하신 분은 교파를 초월해서 없었을 정도로 뛰어난 사역을 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교회 출신인 문준경 전도사님이 계십니다. 신앙을 삶으로 실천하신 문준경 전도사님은 장석초 목사님이 시무하실 때 전도 받고 입교해서, 세분(장석초, 김응조, 이성봉)의 신앙 지도를 잘 받았습니다. 그 후 이성봉 목사님께서 문전도사님을 경성신학교에 보내서 신학교육을 시키셨습니다. 문 전도사님은 졸업 후 섬마을인 신안에서 사역을 하셨습니다. 신안의 192개 교회 중에 성결교회가 75개 교회이고 예성까지 포함하면 100개 가까이 됩니다. 또 나머지 교회들이 직·간접적으로 문준경 전도사님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또 성결 교회가 신안에 그렇게 많은 것은 문준경 전도사님의 헌신의 열매라 할 수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문준경 전도사님을 그 어떤 순교자보다 크게 평가합니다. 순교한다는 것 자체도 대단하지만 문 전도사님이 다른 순교자(손양원 목사, 주기철 목사 등)들과 차별화 되는 것은 그 열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안에 문 전도사님이 직접 세우신 교회들이 부흥해서 굳건히 세워졌고 문준경 전도사님의 영향을 직·간접적으로 받은 교회의 지도자들이 목사만 700명, 장로가 700명 도합 1400명이 배출 되었습니다. 문 전도사님은 전도하다 공산당 붙잡혀 목포로 압송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되지 않아 공산당이 퇴각하면서 본인은 풀려났지만, 신안 증도에는 잔당들이 남아있었는데 본인이 개척한 중동리 교회 성도들이 붙잡혀 죽어간다는 말을 듣고, 증도로 들어가려는 문 전도사님을 “당신이 들어가면 당신도 죽는다”는 주변의 만류가 있었지만 문 전도사님은 다시 섬에 들어가 붙잡혔던 사람들은 잘못이 없으니 놓아주고 자신을 죽이라고 하여 1950년 10월 5일 신안군 증도 백사장에서 무참히 살해당하여 순교하셨습니다.
다음으로 자랑하고 싶은 것은 97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신앙을 지켜온 과거·현재의 성도들입니다. 위의 4분의 영향을 받아 중생, 성결, 신유, 재림의 복음이 오롯이 살아 역사하는 교회입니다.
이런 교회에 16대 담임목사로 그리고 북교동교회출신 1대 목사로 목회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요, 무한한 영광입니다. 그래서 저도 좋은 모델이 되고 싶습니다. 북교동교회의 100년의 영성과 훌륭한 신앙의 선배님들을 딛고 날아오르길 원합니다.
8. 끝으로 성결가족 및 성도와 호남기독신문 애독자에게 마무리 인사한마디 부탁드립니다.
부족한 사람이 금 번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제115년차 부총회장으로 섬길 수 있게 됨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부총회장 기간 동안 잘 배우고 준비하여 많은 분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지도자가 되겠습니다. 지속적인 관심과 기도 부탁드립니다.
대담/ 총괄본부장 박정완, 정리/ 기자 김주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