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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괄본부장 박정완장로 |
“장로님 계십니까? 강의 중 잠깐 들렀습니다. 쉬는 시간이어서 앉지 못하고 가야합니다.” 까만 박스를 움켜쥔 손이 약간 떨린다. “이것을 받으십시오. 좋은 견과류인데 택배로 주문시켰더니만 유통기한 임박한 것이 도착했습니다. 아주 비싼 겁니다. 맛있는 것이니 하루 한포씩 드십시오. 아차, 그런데 많아서 누구하고 나누어 드십시오. 바빠서 갑니다”라며 고맙다는 말을 할 틈도 없이 사무실을 나간다.
유통기한이 임박한 것을 전해주다니, 집에 남아 있는 것을 가져왔다는 말은 않고 택배주문 운운할까, 내가 성인군자처럼 넉넉한 사람처럼 보여 실례를 한 것일까, 아님 진솔한 마음으로 선물로 준 것일까, 과연 얼마의 기한이 남아 있길래 이러는 것일까, 전해주는 사람도 떨리는 손으로 주더니만 유통기한 임박이라는 말에 배신감을 느끼며 나도 또한 떨리는 손으로 제발 유통기한이 좀 있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상자를 연다.
개봉결과 개수는 50개, 성인 1일 1포, 기한은 앞으로 10일이다. 이 일을 어찌할까? 자신에게 물으며 스스로 대답하며 정답을 매겨본다.
가식을 싫어하는 난데, 남에게 이런 실수를 한 것이 없는 것 같은데 오늘 나에게 이러한 수모스러운 일이 있을까 생각해 본다. 만감이 교차 한다. 날 우스운 사람 취급하거나 가벼운 사람으로 여기고 그러는 것일까 생각에 사로잡힌 뇌는 요리저리 요란히도 번득인다.
사무실로 오라고 전화해 이유를 따져야 할 것인가 아님 내다 버려야할까 갈등이 생긴다. 점잖게 생각해본다. 나는 역지사지(易地思之, 처지를 바꾸어 생각하라)를 좋아한다. 어려운 사람을 보면 내 것을 손해 보면서도 청을 들어줬고, 누가 빌려 달라고 하면 가진 것 없어도 탈탈 털어 빌려주고, 내 것이 없으면 말지 연대보증을 서면서 아니면 차주가 돼 가면서도 남의 청을 들어준 사람인데, 내가 경제활동을 하면서 빚진 것보다 남의 사정을 봐주며 진 채무가 훨씬 많은 사람인데, 하찮은 유통기한 임박한 견과류를 부둥켜안고 씨름한 것을 생각해 보니 참으로 한심하기 짝이 없다.
나는 이렇게 화가 치밀어 오르고 배신감을 느끼는 사이 나의 짐작은 아랑곳없이 큰 목소리의 강의 소리가 귓전을 맴돈다. 수강생 두서명인데 그렇게도 신이 날까, 약속시간 두 시간을 넘기며 열정을 토한다.
한참만에야 제정신을 차려본다. 한분이 찾아오신다. 분을 삭이지 않은 체 노골적으로 말한다. “나는 이런 짓을 하지 않는데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과자를 선물로 받아 무시당한 것 같아 몹시도 마음이 상해 제어하기 힘들다.” 그런데 이후의 상황은 나를 의심케 할 정도로 반전이다. 상대방이 아주 맛있는 과자라며 움켜쥐고 드시며 당 있는 사람에게는 아주 좋단다. 당 떨어질 때 섭취하면 생기가 돈단다. 그럼 가져가라니 다섯 봉지 중 세봉을 날래게 움켜쥐고 고맙다고 문 열고 나간다.
우린 흔히 나쁜 것부터 차분히 정리하고 거슬러 올라가 정상에서 좋은 것을 바라볼 수 있는 경지를 가져야 함이 우리에게 성장 동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쓸모없어도 남은 귀히 쓸 수 있고, 나는 귀히 쓰는 것이지만 남은 허투루 쓰고, 나는 값비싸지만 남은 허드레로 생각하고, 남은 허드레이지만 나에게는 보물이 될 수 있는 것이 인생사라고 한다.
내가 비록 잠시 화나 있었지만 어떤 분은 그걸 약으로 드신다니, 약으로 드시면서 유통기한 따위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데, 난 마치 어디가 무너진 양 속절없이 설레고, 유통기한 넘은 우유나 식품을 수없이 먹었어도 배탈한번 나지 않았음에도 그걸 참지 못하고 설레발치는 내 자신을 발견하고 한심한 인간이라 단정하고 더 큰 미래를 향해 노저어가며 유통기한이 짧거나 넘었다고 하더라도 상대방은 선물로 주었는데 선물은 대가없이 주는 것인데 받고도 속상해하는 자신을 뒤돌아보며 까짓것 이젠 유통기한쯤이야 과감히 떨쳐 버리는 습관, 하찮은 것이라도 하나님의 작품으로 생각하며 부질없는 망상 뒤로하고 한없는 하나님의 은혜만을 찬양하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