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에는 열정을, 등에는 희망을 짊어지고 젊음을 무기삼아 먼 길 떠날 채비한다. 앞으로 펼쳐질 인생의 여정을 설계하며 내비게이션의 지시대로 비전의 다리를 지난다. 가다가 버거우면 쉬어 가고 비가 오면 의지할 곳 찾아 몸을 추스르며 재충전의 발판을 만들어 걷고 또 걷는다. 지칠 줄 모르고 길가다가 목마르면 푸른 풀밭 옆 계곡에 걸터앉아 유유히 흐르는 생명의 젖줄 샘에 목을 축이고 동무와 함께 의기투합하여 목적지를 향해 함께 발걸음을 내 딛는다.
빠르면 빠를수록 늦으면 늦을수록 자신만의 시간표대로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다. 청년의 때는 별 볼일 없이 싸돌아 다녀도, 천방지축으로 날뛰어도 피곤함을 모른다.
누구나 예수님을 만난동기가 있을 게다. 나는 이런 청년의 때 예수님을 영접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그럼에도 나는 이것이 하나님이 나를 창세전부터 선택하여 부른 것인 줄 몰랐다는데 문제가 있다.
이게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란 걸 알게 되는 데는 십 수 년이 걸렸다. 나중이라도 알게 되고 주님을 따를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니 기쁨이 넘친다. 하나님은 자녀를 절대로 포기하지 않으시고 꼭 부르신다는 것이다. 늦게라도 자녀로 사는 것이 복의 근원이기 때문이라 믿기 때문이다.
나는 청년의 때 평소 안면이 있는 사람으로부터 “전해줄 선물이 있으니 나오라”는 전화를 받고 약속장소로 나갔다. 테이블 위에 아름다운 색깔의 두툼한 보따리 하나가 놓여있는 것을 보고 뭐냐고 물으니 “차 마시고 돌아가 살펴보면 안다. 박 수사관에게 주는 보물”이란다.
보물이라는 말에 홀딱하여 헤어져 돌아가는 길거리 모퉁이에 앉아 설레는 마음으로 펼쳐봤다. 성경책과 찬송가가 아닌가? 궁금증이 생겼다. 왜? 교회 다니라고 말하지 못하고(그때는 전도가 뭔지도 모름)? 예쁜 보자기에 성경책을 포장해서 주었을까?
교회에서 대예배 피아노반주와 주일학교 교사를 한다는 말은 들은 것 같은데, 교회에 나가자고 한 번도 말하지 않던 사람이 말로 할 것이지 성경책을 보따리에 싸서 선물하다니, 이게 무슨 보물이야(하나님을 믿는 것이 얼마나 큰 보물인지 알지 못해서)? 가문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 전혀 없어 교회생태를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크리스마스 때 교회 나가서 사탕하나 얻어먹어본 사실이 없음)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이것이 하나님이 선택하기 위한 예정된 수순인줄 모르고).
그렇다. 분명 보물이다. 보자기에 감춰진 보물(성경, 찬송)은 십수 년후 나를 예수를 믿게 하는 예비 동작이요(숨김없는 전도), 많은 사람들에게 꿈과 로망을 안겨줌에는 틀림없다. 보물은 일반적으로 가치 있는 물건이나 금전적인 가치를 지닌 무언가를 의미한다. 이 감춰진 보물을 찾는 것은 탐험과 모험이다.
나는 감춰진 보물을 찾았다. 성경책 속의 비밀을 캐내기 위해 기도하며 주야로 말씀을 묵상하고 찬양하며 나가겠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기독정신의 인내력으로 감추인 보물을 사용하며 다음세대를 향한 새롬의 기독문화 가치에 올인할 것이다.
감춰진 보물을 찾는 여정은 결코 쉽지 않지만, 그 공통된 목표와 열정으로 많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 도전해야한다. 감춰진 보물을 찾아내는 여정 자체가 도전과 모험으로 목표를 달성하는 성취감과 만족감으로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고 새롭게 성장할 기회를 얻게 된다는 것이다.
나를 자녀 삼기 위해서 보따리에 숨겨진 주님의 말씀을 주시고 생명의 젖줄로 인도하기 위해서 학습과 맹훈련을 시켜 몸소 체득할 수 있는 신앙심의 영역을 조성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충성되이 섬기며 문서선교를 할 수 있도록 사명자로 지정하여 부르셔 ‘보따리에 감추인 보물, 말씀과 찬송이 생명의 젖줄’되어 건강한 교회공동체를 통한 지역사회를 위한 헌신에서 비롯돼야 할 것으로 여겨진다.
보따리에 감춰진 말씀을 읽고 찬송가를 부를 때 내 영혼의 깊은데서 맑은 가락이 울려 나와 믿지 않은 사람들을 향해 구원사역을 감당하는 크리스천이 되도록 하나님이보호해 주실 줄 믿고 기도하며 헌신할 것을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