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를 잡은 자들이 그를 끌고 대제사장 가야바에게로 가니 거기 서기관과 장로들이 모여 있더라 베드로가 멀찍이 예수를 따라 대제사장의 집 뜰에까지 가서 그 결말을 보려고 안에 들어가 하인들과 함께 앉아 있더라…베드로가 바깥 뜰에 앉았더니 한 여종이 나아와 이르되 너도 갈릴리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거늘 베드로가 모든 사람 앞에서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겠노라 하며 앞문까지 나아가니 다른 여종이 그를 보고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되 이 사람은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매 베드로가 맹세하고 또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더라 조금 후에 곁에 섰던 사람들이 나아와 베드로에게 이르되 너도 진실로 그 도당이라 네 말소리가 너를 표명한다 하거늘 그가 저주하며 맹세하여 이르되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곧 닭이 울더라 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마태복음 26:57~75)
목회자에게는 예수를 모르던 분을 구원받게 하고 그에게 세례를 베푸는 것이 기쁨입니다. 세례교인은 확고한 신앙의 토대 위에서 귀한 일꾼으로 성장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은혜로운 성도와 교제해야 합니다. 분별력이 없이 은혜가 없는 사람과 교제 하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넘어집니다. 그러므로 항상 자신이 앉은 자리를 확인해야 합니다. ‘앉는다’는 것은 교제를 의미합니다. 본문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否認)하던 때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모두 도망갔지만, 예수를 멀찍이 따라가서 대제사장의 하인들과 함께 앉아 모닥불을 쬐는 중에 예수님을 배반했던 베드로의 역사적인 실수를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 누구와 함께 앉았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할 때, 베드로가 앉았던 곳은 그리스도를 죽이려고 모해(謀害)하는 대제사장의 하인들과 함께한 자리였습니다. 또한 돈에 매수되어 거짓 증언을 하기 위해 출두한 증인들과 함께 앉았습니다. 그러나 복 있는 사람은 은혜로운 사람과 교제합니다. (마태복음 26:58)
둘째, 어디에 앉았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베드로가 앉았던 자리는 “바깥 뜰”이었습니다. 바깥 뜰은 의인을 죄인으로 뒤집어씌우는 장소이며, 은혜가 없고 전통과 형식만 남은 유대교 권력가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심문하던 장소였습니다. (마태복음 26:69; 시편 1:1)
셋째, 무슨 일로 앉았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베드로는 모닥불을 쬐며(막 14:54)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귀동냥하기 위해, 또한 예수님의 심문 결과를 지켜보기 위해 그 자리에 앉아있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예수님을 악평하는데도 비겁하게 침묵했고, 맹세하면서까지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 (마태복음 26:58, 26:72, 74)
성도 여러분!
은혜로운 사람들과 함께 앉아서 그들이 누리는 은혜를 함께 나눈 일이 있습니까? 반대로 불평하는 사람들과 함께 앉아서 양심에 고통을 느끼면서 그들의 말에 동조한 일은 없습니까? 은혜로운 자리와 은혜를 소진하는 자리를 잘 분별하고 앉고 일어설 때를 아는 지혜로운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초대를 받으면 겸손하게 말석(末席)에 앉고, 다른 사람을 모해(謀害)하는 자리는 피해야 합니다. 남을 험담하는 자리에 함께 앉는다면 자신의 신앙도 흔들리고 은혜를 잃어버릴 위험이 있습니다. 교회를 사랑하면서도, 호기심 때문에 교회를 모해하는 사람들과 동류(同類)인 척 어울릴 필요는 없습니다. 의로운 주장을 확고하게 말할 용기가 없다면 더욱 그런 자리를 피해야 합니다. 은혜로운 자리에서 은혜로운 사람과 교제하며 신앙과 인품이 날마다 성숙해서 예수님을 더욱 많이 닮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