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중에 있었던 일입니다. 시골 교회에 공산당이 들어와 목사님을 잡아갔습니다. 그래서 장로님이 예배를 인도했습니다. 그런데 공산당의 핍박이 더욱 심해져 더 이상 교회에서 예배를 드릴 수가 없게 되었고, 결국 산 속에 토굴을 파고, 십자가를 세워놓고 숨어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주일 아침, 인민군 복장을 한 사람이 갑자기 들이닥쳐서 십자가를 땅바닥에 내팽개쳤습니다. 그리고 총을 들고 협박했습니다. “만일 십자가에 침을 뱉고 밟고 지나가면 살려주겠다.” 잠시 후 눈치를 보던 몇 사람이 십자가에 침을 뱉고, 십자가를 밟고 지나갔습니다.
드디어 장로님 차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장로님은 잡자기 십자가를 부둥켜안았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뭍은 침을 자신의 옷으로 닦아내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으로 구원을 받고 영생을 얻었는데 이제 와서 내가 살겠다고 십자가를 버릴 수는 없습니다.”
이것을 본 공산군은 장로님을 발로 걷어차며 옆으로 밀어냈습니다. 다시 여러 명의 사람들이 십자가에 침을 뱉고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장로님의 며느리 차례가 되었습니다. 장로님의 며느리는 장로님처럼 십자가를 부둥켜안았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버지가 그토록 아끼고 사랑하시는 십자가를 내가 어찌 부인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을 본 공산군이 장로님과 며느리를 끌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이젠 총살당해 죽겠구나 싶었는데 한참을 끌고 가다가 갑자기 공산군이 총을 내려놓았습니다. 그리고 옷을 벗는데 보니까 국군인 것입니다. 지금 중공군이 내려와서 급히 남쪽으로 내려가야 하는데 남하하는 배에 빈자리가 딱 두 자리가 남아서 그 두 사람을 데리러 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왕이면 예수님을 잘 믿는 사람을 태우고 가려고 자신이 연기를 했다는 것입니다. 결국 끝까지 십자가를 부인하지 않고, 믿음을 지킨 장로님과 며느리만 생명을 건지게 된 것이지요.
우리는 믿음 때문에 세상 속에서 박해를 받고, 고난을 당하고, 시련 가운데 살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박해와 고난과 시련이 예수님 안에서 누리는 우리의 행복을 빼앗아 갈 수 있을까요?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그 박해와 고난과 시련은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마태복음 5장 12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주님은 우리가 박해와 고난과 시련 가운데 있을 때에 “기뻐하고 즐거워하라”하십니다. 왜요? 그 박해와 고난과 시련으로 인하여 하늘에서 우리가 받게 될 상이 너무나도 영화롭고 엄청난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우리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박해와 고난과 시련으로 인하여 행복을 빼앗길 사람들이 결코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인 우리는 비록 그 상황이 고난과 시련이라 할지라도 모든 상황 속에서 행복을 누리며 행복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